공포에 맞선 어떤 부자의 선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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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26면

지난 23일, 주식시장이 열리자마자 공포감이 밀려왔다. 밤새 급락한 뉴욕 증시 때문에 코스피가 5% 이상 급락했다. 올 들어 10번째 사이드카가 발동했다. 설상가상으로 코스닥시장은 오후 들어 10% 넘게 떨어지면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돼 20분간 거래가 정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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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설마 했던 1000포인트 붕괴가 현실화하면서 투자자들의 공포는 극에 달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조심스럽게 바닥을 얘기하던 전문가들도 이젠 주식시장 전망을 묻는 질문에 손사래를 친다. 그만큼 예상 밖의 공포 심리가 시장을 지배한다는 뜻이다. 투자자 손실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혼자금이나 전세자금같이 급하게 사용할 자금을 무리하게 투자했다가 모두 날려 버리거나 손실이 50%를 넘는 투자자도 부지기수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설사 최근 주식을 매도하거나 펀드를 환매한 투자자라 하더라도 밀려오는 공포감에 다시 투자하고자 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다. 최모(자영업자·56)씨는 대학생 자녀 두 명에게 각각 3000만원씩 증여를 결정하고 우량주 세 종목을 골라 주식을 매수했다. 돈을 주는 대신 주식을 매수해 자녀들의 결혼자금을 미리 증여한 것이다. 이모(회사원·45)씨는 1000포인트가 붕괴되자 연금펀드에 5000만원을 가입했다. 향후 5년간 자금을 묻어 둘 요량으로 투자를 결심했다. 투자자들이 하나같이 주식시장을 떠나고 싶어하는 심정뿐인데 이때 용기를 내는 투자자들이다.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주가가 바닥이고 조만간 상승할 것이라 확신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상승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오를 때까지 기다릴 자신이 있으니까’. ‘10년 주기라고 생각하는 거지 뭐’.

그렇다. 지금은 시간 싸움이다. 다만 먹고사는 데 써야 할 돈이라면 기다리지 못한다. 사는 데 지장 없는 돈이어야만 전쟁터에 뛰어들어도 승산이 있다. 지금은 투자 수익으로 100만원을 얻는 것보다 내 손안의 100만원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지는 때다. 하지만 여유자금이라면 그 소중함이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위기의 시절에 공포 심리를 이길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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