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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앞서 무리하다 보니 기성 정치인과 똑같아지더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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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호 10면

5월 15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18대 초선 의원 연찬회에서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8대 국회 첫 국정감사 주요 일정이 24일 끝났다. 국감 사상 처음으로 첫날 출석률 100%를 기록하는 등 평균 출석률이 95%를 훌쩍 넘었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이다. 새 정부 출범, 상임위 개편, 지각 개원 등 걸림돌도 많았다.

포부는 컸는데… 초선들 스스로 매긴 국감 성적표

초선 의원들의 통렬한 자기 반성도 잇따랐다. 한나라당 이정현(문방위) 의원은 당 홈페이지에 ‘국감 유감’이라는 글을 올려 “국정감사가 행정부에 면죄부를 주는 통과의례와 같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김성태(국토해양위) 의원은 “신성한 국감이 시골 장날 떠돌이 장사치들의 자리로 전락할 수 있는 분위기”라고 평했다.

‘생애 첫 국감’을 치른 초선 의원은 134명. 전체의 45%에 이른다. 이들에게서 시간·자료·경험 부족의 ‘첫 국감 삼중고(三重苦)’를 들어봤다.

국감 날 아침에야 ‘자료 없다’는 정부
국회 사상 네 번째로 늦은 개원으로 상임위 배정이 늦어져 초선들은 국감 준비에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한나라당 김성식(기획재정위) 의원은 “개원이 늦어지는 바람에 국감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다”며 “이번 국감이 끝나자마자 내년 국감 준비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솔직히 처음 맡는 분야다 보니 (피감 기관에) 엄청난 양의 자료를 요청했는데 제대로 분석할 시간이 없어서 답답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나성린(재경위) 의원은 “초선 의원이 자료 요청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피감 기관이 자료를 잘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성태 의원은 “(피감 기관에서)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 전화를 드리겠다는 식으로 일관하다 국감 당일 아침에야 자료가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고 꼬집었다. 민주당 이춘석(법사위) 의원은 ‘내부자료라 공개할 수 없다’는 피감 기관에 “의원의 질의서도 내부자료라 사전에 공개할 수 없다”고 맞대응하기도 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외통위) 의원은 “국감은 자료 입수 전쟁”이라며 “통일부에서 자료를 안 내놓아 직접 발로 뛰어 찾아내자 여당 의원이 ‘왜 야당에만 줬느냐’고 따지는 해프닝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안규백(국방위) 의원은 “정부에 자료를 요구했을 때 국가 1급비밀이 아닌 이상 내놓도록 법을 보완해야 한다”며 “언제든지 여야가 서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대승적 차원에서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0분 승부’ 요령 없어 밀리고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를 지낸 민주당 김상희(환노위) 의원은 “국감 모니터링을 할 때는 의원들이 준비도 제대로 않고 대안 없이 문제 제기만 한다 싶었는데…”라며 멋쩍게 웃었다. 환노위 국감 마지막 날 만난 김 의원은 “오늘 점심은 모든 의원이 컵라면으로 때웠다”며 “하루 3시간씩 자며 주 7일을 매달려 준비해도 질문시간 7~10분에 대안까지 끌어내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한 초선 의원은 “솔직히 시간보다 콤팩트하게 질문하는 요령이 초선은 부족하다. 재선 이상은 압축해 질문도 잘 하더라”고 말했다.

애써 준비한 내용도 다른 의원이 먼저 질문하면 접어야 한다. 환노위의 경우 대부분의 의원이 폐기물 시멘트 관련 내용을 준비했지만 ‘선점’한 의원만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다. 한 여당 초선 의원은 “아무래도 나중에 하면 김이 빠지니까 포기하게 될 때가 많다”며 “솔직히 주요 기관 국감일엔 제일 먼저 질문하고 싶고, 언론이 철수한 저녁 시간에는 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질문 순서는 양당 간사가 순번제로 정하지만 의원들끼리 변경도 가능하다. 눈치 빠른 재선 이상 의원들은 겹치는 질문이 나오겠다고 판단하면 얼른 순서를 변경하기도 한다.

시각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 경험 부족을 메우기도 한다. 자유선진당 이명수(행안위) 의원은 소방방재청 국감 때 화재 진압장비를 직접 들고 나와 문제점을 지적했고 경찰청 국감 때는 유치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틀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영우(국방위) 의원은 YTN 기자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지역구인 포천의 사격장 문제를 다룬 동영상을 제작하고 탄피를 국감장에서 직접 들어 보였다.
 
전직·정당 따라 명암 갈리기도
증인에게 호통치는 등 ‘국감 악습’은 초선 의원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나라당 성윤환(문방위) 의원은 “조금 야한 얘기 같지만 5분은 너무 짧다”는 발언 때문에 민주당이 윤리심사를 요청하는 등 곤욕을 치렀다. 한나라당 김소남(행안위) 의원은 간부와 답변을 의논하는 원세훈 행안부 장관에게 “나를 보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나라당 장제원(행안위) 의원은 증인으로 나온 ‘유모차 부대’ 주부에게, 같은 당 신지호 의원은 조진형 행안위원장에게 거친 언사를 구사해 구설에 올랐다. 김상희 의원은 “시간은 없고 답변은 시원하게 안 나오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크다 보니 초선 의원도 다를 게 없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피감 기관장 출신 초선들은 ‘호통 국감’ 대신 풍부한 현장 경험을 살려 충고나 제언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육군 참모총장 출신인 선진당 이진삼(국방위) 의원은 질의 대신 정책 방향을 ‘훈시’했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송민순(외통위) 의원은 외교부 직원들이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휴식 시간을 배려하기까지 했다.

경찰청장을 지낸 무소속 이무영(행안위) 의원은 “피감 기관을 잘 알기 때문에 업무환경 개선 방안 등 생산적 의견을 내놓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유모차 시위대 처벌 문제 등 국감이 ‘정쟁’으로 번지는 걸 보니 무소속인 게 국감을 제대로 할 수 있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상임위당 한 명꼴인 소수 정당이다 보니 다른 당처럼 A의원이 하던 질문을 B의원이 이어받아 계속 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영우 의원은 “국감은 싸우기만 한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군 출신이 많은 국방위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여야를 떠나 협력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정권 책임론 등 여야 정쟁에서 벗어나 정책 국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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