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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잘리면 허허벌판인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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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은 혹시 회사가 인력 구조조정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코노미스트 1988년 창업한 새시 전문업체 A사. 이 회사는 업계 3위권 밖으로 떨어진 적 없는 그야말로 ‘알짜배기’ 업체다. 월 매출은 400억원, 새시 생산량은 연간 6000t에 이른다.

구조조정 칼바람에 떠는 직장인들 #자영업 침체로 창업도 힘든 상황 … 정부 차원의 사회안전망 확충해야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다

창업 이래 ‘위기’라곤 단 한 차례도 겪지 않았던 A사에 침체의 우울함이 깃든 것은 지난해 말. 원자재 값이 급등한 이후다. 새시의 주 원자재 PVC 레진(가죽)은 지난해 말 t당 97만원에서 현재 150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또 다른 원자재 철보강재도 같은 기간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치솟았다.

A사는 가파르게 상승한 원자재 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공장 가동률을 떨어뜨렸다. 창업 이후 지난해 말까지 A사의 공장이 멈춘 것은 월 2회. 이는 이 회사의 불변의 진리이자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만 월 5~6차례 멈춘 달이 적지 않다는 게 A사 대표의 말이다.

A사의 고민거리는 또 있다.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자금회전이 원활하지 않다. A사는 건설사 15곳에 새시를 공급하고 있는데, 올 9월 이후 돈을 받은 업체는 고작 2개뿐이다. 나머지 건설사들은 ‘우리도 죽겠다, 살려달라’고 애원이다. 고민 끝에 A사는 최근 ‘자금 회수’에 나섰다.

장기 미회수 채권은 경매를 통해 일부 회수했다. 채무자에겐 잔인한 일이었겠지만 이 회사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파트 등 부동산과 비주력 설비도 올 초 전량 매각했다. 미래를 포기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였다. 이뿐 아니다. 각종 수당은 물론 유류·휴대전화비 등 직원 보조비도 50% 이상 깎았다. 만약 더 어려워진다면?

A사 대표는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감원’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다. 금융위기를 잡기 위해 주요 국가들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경기침체의 악순환이 이어질 태세다. 국내 실물경기 역시 가파르게 위축되고 있다.

서민은 물론 돈 가진 사람들까지 지갑을 닫고 있다. 돈줄이 막힌 기업들은 투자는커녕 감량경영에 나서고 있다. 중소기업의 사정은 절박하다. 제조업체의 사례를 보자. 현재 중소 제조업체들의 공장은 멈춰서고 있다. 공장을 정상적으로 돌릴 여력조차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1385개사의 8월 중 생산설비 평균 가동률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포인트 떨어진 69.5%를 기록했다.

이는 연중 최저치다. 공장가동률이 떨어진다는 것은 생산량 또는 출고량이 감소한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이는 일부 인력을 감원해도 공장이 돌아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제조업체가 경영 효율성을 찾으려면 공장가동률을 높이거나, 사람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중소기업들 ‘감원 바람’ 솔솔

그러나 요즘 같은 경기 침체 속에서 공장가동률을 높이는 것은 힘에 부친다. 결국 경영 효율성을 꾀하기 위해선 감량하는 것, 이를테면 사람을 줄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비단 중소 제조업뿐 아니다. 인력 구조조정 분위기는 항공·시멘트·제약·IT업계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코리아리크루트가 최근 중소기업 인사 담당자 25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하반기 인력 구조조정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대대적인 감원 칼바람을 예고한 셈이다. 실제 방송장비 제조업체 아리온테크놀로지는 전체 직원의 30%를 감원할 예정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본사 건물을 매각하기로 한 데 이은 후속 조치다.

금융 사무기기 전문 업체 청호컴넷도 지난 3월 대규모 명예퇴직을 단행한 데 이어 최근 계열사 정리에 나서고 있다. 의약품 제조 판매업체 제넥셀세인 역시 인력감축과 영업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대우일렉도 최근 자체적으로 1500명을 줄이고 IS사업부를 재편했다. 조선업 호황을 틈타 시장에 진입한 신설 조선업체들도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용준 신영증권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 한국 조선업체 수주량을 보면 전년 대비 무려 62.7% 늘어났는데, 상위 조선소를 제외한 신설 조선업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수주량의 33.6%를 차지했다”며 “하지만 최근 이들 신규 조선업체의 건조량이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수주한 물량을 소화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이다.

조 이코노미스트는 이어 “신설 조선업체들의 인력 구조조정 등 감량경영이 조만간 시작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업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기업체질 강화에 일조한다. 실적개선 효과도 꾀할 수 있다. 최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한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 이수페타시스가 올 2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역시 적극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식품업체 대상도 올 상반기 7.7%의 영업이익률을 기록, 전년 대비 2.9% 성장했다.

자영업 위기…구조조정 인력 갈 곳 없어

문제는 외환위기 때와 달리 감원 대상 인력이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게 여간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땐 그나마 자영업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무엇보다 자영업계가 포화상태다. 구조조정된 인력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가 거의 없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26.5%에 달한다.

이는 OECD 평균(14.4%)의 두 배 규모다. 미국 7.3%, 일본 9.9%에 비해 2~3배에 이른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직장에서 밀려난 실직자들이 식당·숙박업·소매업 등에 대거 몰려서 비롯된 과당경쟁도 한계에 다다랐다. 자영업의 위기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자영업자 수는 총 594만5000명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7만3000명 줄었다.

이는 카드 사태로 내수경기가 극도로 침체됐던 2003년(594만4000명) 이후 최저치다. 가장 타격을 입고 있는 업종은 음식업이다. 수년 전만 해도 식당 매출의 40~50%가량이 순이익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먹는 장사, 물장사를 해야 돈 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식자재비나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솟구친 지금, 100원어치 팔면 20원도 남기기 힘들다는 게 음식업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식당, 술집의 휴·폐업이 속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에 따르면 올 7~8월 휴·폐업소 수는 3만7478개에 달한다. 총 41만5000개 음식점 가운데 9.03%에 해당하는 업소가 올여름 문을 닫은 것이다. 서민생활 밀착형 업종인 목욕탕, 미용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김수철 한국목욕업협회 사무총장은 “극심한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목욕탕이 월 20개씩 문을 닫거나 장기휴업 하고 있다”며 “특히 서울의 1300개 목욕탕 가운데 15%가량이 장기휴업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 6만5000개에 달했던 미용실도 올해 들어 1000여 개가 줄었다. 매월 평균 100개씩 감소했다는 얘기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영상 FC창업코리아 차장은 “창업시장의 매출 부진이 장기화하고 있다”며 “특히 신규수요도 발생하지 않은 탓에 업계의 침체는 더욱 장기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핸들’을 잡는 것도 녹록지 않다.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퇴직자가 운송시장에 진입한 탓에 이 시장 또한 꽉 찼다. 실례로 1999년 14만3000명에 불과했던 화물차 운전자는 2007년 말 현재 33만 명으로 증가했다.

반대로 화물량은 같은 기간 4억1000t에서 5억5000t으로 소폭 증가해 화물차 운전자가 과잉공급돼 있는 상태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이번에 구조조정 되면 허허벌판에 홀로 남는 격’이라는 말이 나도는 까닭이다.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외환위기 시절, 우리는 명예퇴직자 등 구조조정 인력이 사회에 재취업할 수 있는 여건이 어느 정도 조성돼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구조조정 대상자들은 허허벌판에 내몰려 갈 길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영업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 등 사회안전망이 갖춰져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숫자로 본 자영업 위기

■ 자영업자 포화상태-전체 취업자 수 대비 자영업자 비율 26.5%
- OECD 평균 14.4%, 미국 7.3%, 일본 9.9%

■ 최근 자영업자 감소 추세
- 2008년 상반기 595만5000명-지난해보다 7만3000명↓
- 카드 사태로 내수 경기 침체됐던 2003년 이후 최저치

■ 음식업체 폐업 도미노
- 올 7~8월 3만7478개 휴·폐업

■ 목욕탕 및 미용실 부진
- 서울 1300개 목욕탕 중 15% 장기휴업
- 미용실 월 100개씩 폐업

■ 화물차 운전자 포화 상태
- 외환위기 이후 급증
- 14만3000명(1999)→33만 명(2007)으로 증가

이윤찬 기자 chan487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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