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탐방기 ③ 장미란 선수가 재래시장으로 간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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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 세 번째 무대는 의외의 공간에서 펼쳐진다. 도시의 쇠락해 가는 재래시장이 비엔날레 전시가 이루어지는 주요 무대라고 하면 어떤 느낌일까? 예술 행정가들은 도심의 후미진 재래시장에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음으로써 공공프로젝트를 완성시킬 수 있다고 자부했다. 여느 재래시장이 다 그러하듯 ‘대인시장’ 역시 상인과 행인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시장판이다. 하지만 비엔날레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이곳에서 오묘하고 달콤한 방법으로 예술과 상술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 어쨌거나 상인들은 물건이 잘 팔려야 좋고, 예술가들은 복잡한 시장판을 아름다운 소통공간으로 꾸며놓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지나가던 행인은 그 모습에 감탄하며 유쾌한 쇼핑을 즐기고 싶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건강한 소통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행인들이 가장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축제를 기념할 수 있는 티셔츠다. 그러나 시장에 늘어선 상점들은 온통 건어물전이나 약재상, 반찬가게 등이다. 어딜 둘러봐도 간단하게 티셔츠를 살 만한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티셔츠를 꼭 옷 가게에서만 팔라는 법이 있는가? 비엔날레를 기념하거나 예술미가 돋보이는 티셔츠들이 어물전에도 걸리고 약재상 간판에도 걸렸다. 생선을 사러 나온 이웃들이 갸우뚱거리며 티셔츠를 만져보고 지나가던 여행객들도 한걸음 멈추고 카메라를 꺼내든다. 대추와 삼을 사러 나온 주부들도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셔츠를 구입해간다. 고정관념을 깨고 반전의 묘미를 일상에 끌어들이는 힘, 그게 예술 아닌가. 이쯤 되니 일단 유쾌한 분위기 조성은 성공이다. 풍물시장에서는 한층 더 성숙된 소통을 시도 중이다.


행사 기간 동안 풍물시장에서 불우이웃돕기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장소 자체가 눈요기가 되니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가 평소보다 높은 편이라고 한다.
대인시장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복덕방 프로젝트’이다. 예술과 재래시장의 접목을 그라피티로 잘 해냈다며 방문객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복덕방 프로젝트’에 참여한 구헌주(28) 작가는 빈 점포의 셔터에 역도선수 장미란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다.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급부상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장미란 선수가 셔터 가득 그려져 있으니 지나가던 행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발걸음을 멈춘다. 셔터를 내린 채 을씨년스럽게 방치된 빈 점포는 더 이상 없다.


간단한 그라피티만으로도 빈 점포 주위를 흐르는 지배적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작가의 그라피티 솜씨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 광주지역 프로야구 연고구단인 해태타이거즈 시절의 그라피티를 시장 곳곳에 계속해서 그렸다. 지역 주민들은 향수를 떠올리며 열광하고 방문객들은 그 신선한 시도에 큰 점수를 주며 복덕방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감동받았다. 특히 야구단 그라피티의 경우 해태타이거즈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대인시장의 전성기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다시 재래시장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간절함을 보다 많은 방문객들에게 전달하고자 작가는 비엔날레 스페셜 티셔츠까지 제작했다. 해태타이거즈를 상징했던 호랑이 그림 등이 투박하게 박혀있는 이 티셔츠들은 그라피티 골목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다. 시장에서 부식가게를 하고 있는 이현재(58)씨는 “비록 반찬가게이지만 티셔츠가 가게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며 경기가 어려워 생활이 힘들지만 비엔날레 덕분에 요즘엔 기분이 즐겁다고 미소를 지었다. 판매된 티셔츠의 수익 중 절반은 시장 내 상인들에게 분배된다고 한다.
대인시장 주차장 쪽으로 펼쳐져 있는 풍물시장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풍물시장은 ‘복덕방 프로젝트’에 열심인 여러 작가들이 대인시장에 상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되었다. 시장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좌판이지만 꽤 여러 종류의 골동품들이 늘어서 있어 행인들에게 소박한 재미를 안겨준다. 물건의 종류는 약 80여종으로 지역민과 시장 내 상인, 작가들이 기증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옛날 소품들이나 중고 카메라, 앤틱 식기, 액세서리, 목각인형 등 시선이 가는 물건도 즐비하다. 앞서 말했듯 이곳에서 판매되는 물건의 수익금 전부는 불우이웃돕기에 사용될 계획이다.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2008.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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