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전쟁의 잔혹한 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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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어느 한적한 산간마을에
기상학자를 꿈꾸는
소녀가 살았답니다.

가난한 철도 노동자의 딸,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도
수퍼마켓에서 일해야 했지만

열심히 사는 그녀를
친구들은 자랑스러워했대요.

대학에 갈 학비를 마련하러
군대에 지원했을 땐,
"용감하니까 잘 해낼 거야."
모두가 격려했지요.

소녀가 전장으로 떠난 뒤
마을 입구에는
'당신은 마을의 자랑'이란
글귀와 함께 사진도 걸렸어요.

그 뒤 어느날
신문에 실린 사진 몇 장.
벌거벗은 포로들을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고
축 늘어진 포로의 목에
줄을 묶어 끌고다니는 모습.

전 세계가 소녀에게
"악녀, 미국의 추악함"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동안,

고향 마을 친구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답니다.

전쟁의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쁜 물을 마셨을까,
악한 마법사의 꾐에 빠졌을까.

평범한 시골 소녀가
'잔혹의 여왕'으로 변해버린
기묘한 동화 같은 이야기.

피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삶과 꿈까지 망가뜨리는
전쟁의 잔혹한 결말.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진에 등장한 여군 린디 잉글랜드(21)일병이 포로 폭행, 외설스러운 행위 자행 등의 혐의로 미군 당국에 기소됐다.

신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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