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도정보전쟁>上.원정 기록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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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프로야구는 훔치고 속이는 경기(?)다.특히 이같은 일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진행돼야 한다.여기에 어려움이 있다.그러나 프로야구 구단들은 감독들의 이같은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정보원(?)을 운용,미리 상대팀의 취약점을 간파 해 알려준다.
경기중에도 이같은 첩보전은 계속된다.한마디로 관중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치열한 머리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프로야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정보전의 실체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94년 10월4일.
해태-한화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해태는 2-1로 앞선 5회초2사2루에서 대타로 나온 장종훈을 고의볼넷으로 거르고 이정훈과승부를 걸었다.김응룡감독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으나 해태는 동점타를 맞고 결국 역전패했다.당시 장종훈은 팔꿈 치 부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지도 못할 형편이었다는게 경기후 밝혀져 해태 김감독은 무릎을 치며 후회해야 했다.
해태가 장의 부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만 있었더라도 그를 거르지도, 쉽게 역전패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해태는 정보전에서 진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8개구단에는 「스파이」로 불리는 원정기록원들이 있다.이들의 역할은 다른 팀 경기를 면밀히 분석,선수들의 컨디션과 팀분위기등 정보를 만들어 감독에게 보고하는 것.
타자가 주로 노린 코스와 구질,타구의 방향,투수들의 주무 기와투구스피드등을 낱낱이 기록한다.
평소 알고 지내는 상대팀 선수들을 찾아 부상 선수들의 정도.
상태를 캐내기도 한다.스파이들의 능력에 따라선 작전을 거는 감독의 취향이나 버릇까지 낱낱이 조사해 보고하기도 한다.
감독은 이들 첩보원이 만들어준 자료를 검토한후 그 팀과의 경기(?)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그동안 유일하게 원정기록원이 없었던 해태 김응룡감독은 지난해 팀이 부진하자 『젊은 선수들에 대해 아는게 없으니 상대방의 작전에 대비할 방법이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프로구단의 정보전은 경기가 벌어지는 동안에도 치열하다.92년4월22일 쌍방울-태평양의 경기.
쌍방울은 기록원이 덕아웃의 코치에게 태평양 선발 정민태의 투구스피드를 무전기로 일러주었다.
프로데뷔전을 치르던 정민태의 공은 소문대로 빨랐다.그러나 4회부터 문제가 생겼다.방금전까지 1백45㎞이상이던 정의 직구스피드가 갑자기 1백30㎞대로 뚝 떨어진것.
쌍방울 기록원은 무전기에 대고 스피드건에 찍힌 속력을 전했으나 무전기를 통해 들려온 대답은 『똑바로 안할래』라는 불호령.
스피드건엔 그렇게 찍히고, 코치는 믿지 않고….
하는 수 없이 그 기록원은 자신의 눈대중으로 『146,148,145…』라며 정의 스피드를 아무렇게나 불러대 화를 모면했다. 그러나 정민태는 4회부터 팔꿈치 통증으로 전력투구가 불가능했던 것.스피드건에 찍힌 정의 투구속도는 진짜 1백30㎞대였다.갓 입단한 어린 기록원이 코치의 불호령 때문에 빚은 해프닝이었지만 정보는 정확했던 것.
김홍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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