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을찾아서>김원우 장편소설 "모노가미의 새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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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우리 문단의 터프 가이」김원우(49)씨가 상.하 2권으로 펴낸 전작 장편 『모노가미의 새 얼굴』이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솔출판사 刊).77년 『한국문학』으로 등단한 김씨는 당대사회의 가장 첨예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정밀한 문 장과 소설적 정공법으로 파헤치며 우직할 정도로 독보적인 소설세계를 일궈가고있다.그런 그가 『모노가미…』에서는 허물어져가는 성풍속과 윤리,그리고 가족제도를 들고 나왔다.
영화 사전심의가 위헌으로 폐지되고 TV드라마 『애인』이 안방을 달구며 불륜시비를 불러일으켰다.
그런가 하면 장정일씨의 장편소설 『나에게 거짓말을 해봐』가 외설 태풍을 맞아 출판사가 스스로 책을 회수했다.이러한 시점에서 나온 『모노가미…』는 성.불륜을 소설,나아가 예술은 어떻게다루어야 하는가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 극복의 본체는 사실상 모든 제도와의 검질긴 싸움일 뿐이고,사람은 유한한 존재로서 그 싸움에서 늘 져왔다.이른바 이부조리를 무찌르기 위한 인간의 모든 노력도 제도의 사슬에 얽매임으로써 인간극은 이중삼중으로 절망적이 되고 만 다.그렇긴 해도 그 몸부림이야말로 문명사회의 역사의 요체인 것도 사실이다.
』 작품을 펴내며 한 말이다.이 작품은 일단 제도를 문제 삼고있다.제도에서도 모노가미,즉 일부일처제의 실상을 통해 우리시대의 성.윤리관을 점검해나가고 있다.
건축설계사인 주인공 나는 신혼초 월급날 같은 회사 여직원과 불륜을 저지른다.월급봉투를 고스란히 아내에게 바쳐야 하는 남자의 자존심의 발동에서다.나는 처가의 도움으로 단칸 셋방에서 벗어나 아파트로 입주한다.학생인 처남과 같이 산다는 조건으로.
점점 모계사회화돼가는 과정에서 나는 「쓸개 없는 인간」으로 남는다.그러다 드디어 이런 남자의 신세에 반발해 가출도 하고 아내.처가와의 관계를 끊는다는게 이 작품의 기둥 줄거리다.
이런 줄거리 속에 아내의 주부상습도박단 사건과 불륜,그리고 나의 불륜,해서 겹간통이라는 주위에서 그리 낯설지 않은 상황을세밀히 재연해내고 있다.그러면서 작가는 이제 모계사회화돼가며 일부일처제도가 와해돼가고 있음을 드러낸다.
주인공인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와 상황을 아주 리얼하게 이끌고그려가면서도 냉정하다는게 이 작품의 특징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만 줄뿐 결코 그상황으로 함몰돼 들어가지 않는다.정사장면의 묘사에서도 작가는 철저하게 냉철하다.
외설시비를 일으킨 일부 소설들에서 문장은 성을 위한 성에 봉사한다.성을 하나의 물질이나 묘사해야 될 대상으로 바라보며 작가가 거기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문장으로써 탐닉해 들어간다.그러면서 독자들도 그 행위의 활자 공간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러나 성을 바라보는 김씨의 태도는 의사나 학자 같다.절제된언어로 그 행위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묘사해들어가면서도 문장 틈틈이 비판적.반성적인 작가의 의식이 배게 한다.
이때 성은 물질이 아니라 성에 대한 인간적 의식이 된다.즉 즉물적 섹스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김씨의 그러한 문체는 독자들로 하여금 작중의 이야기나 상황에푹 빠져들게 하는 것을 방해한다.그러면서 독자도 제몫의 의식을갖고 독서에 참여하게 하는 어찌보면「고통스런」 지성적.비판적 소설읽기를 원한다.그래서 김씨는 대중적 독자군 을 거느리지 못한다.그래도 김씨는 소설의 본분,삶과 사회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는 본격.정통소설 문법을 우직하게 고집하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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