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여행>洞房-신혼부부가 첫날 밤을 보내는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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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아방궁(阿房宮)의 미녀 삼고낭(三姑娘)은 진시황(秦始皇)의 폭정과 음일(淫逸)을 참지 못해 화산(華山)으로 도망쳤다.그전분서갱유(焚書坑儒)때 심박(沈博)이라는 서생(書生)도 참변을 피해 화산에 숨어들었다.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 나 나뭇가지를향(香)으로,천지신명(天地神明)을 주례로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산속이라 첫날밤을 보낼 신방(新房)이 있을 리 없었다.두 사람은 바위 아래 있는 동굴(洞)을 신방(房)으로 삼아 첫날밤을 보냈다.이리하여 「洞房」은 「동굴의 방」으로 신방을 뜻하게 되었다.지금은 신혼부부가 사는 집을 뜻하지 만 본디는 첫날밤을 보내는 방으로 신부측 집의 방이다.신방에는 화촉(華燭)을 밝혀놓는데(華燭洞房) 신랑이 먼저 들어가 신부를 기다린다.신랑은 이미 사모관대(紗帽冠帶)를 벗고 신부측이 마련한 두루마기로 바꿔 입는데 이것을 「관대벗김」 이라고 한다.
신부가 들어오면 간단히 술을 나눈 다음 신부의 족두리와 예복을 벗긴다.이때 친지들은 신방의 창호지를 뚫어 엿보는데 그것을「신방지킨다」또는 「신방엿보기」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촛불이 꺼지면 물러나게 되는데 촛불은 반드시 신랑이,그것도 옷깃으로 꺼야 한다.입으로 불어 끄면 불길하다고 했다.이렇게 하여 신방에서 첫날밤을 보내면 아침에 신방에 잣죽이나 떡국을 올렸다.
이상은 전통혼례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장면이고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혼여행길에 오르니 엄밀히 말해 지금의 신방은 호텔방인 셈이다.
정석원 한양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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