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국민 통일의식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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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와 미국의 대표적 정책연구기관인 랜드(RAND)연구소는 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정원) 후원으로 통일에대비한 한국인의 외교.안보의식을 진단하는 공동 여론조사에 이어이를 심층분석하는 좌담회를 개최했다.이 좌담회 에서 참석자들은응답자들이 국제정세에 대해 실용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으면서도 사안에 따라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이는 특히 외교.안보사안에서 두드러졌으며 전체적 관점에서보다 단편적 판단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 됐다.
[편집자註] 한용섭교수=중앙일보.랜드연구소 공동 여론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죠.
펍킨박사=이번 조사목적은 한국인들이 세계질서에서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향후 10년간의 경제적.안보적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알아보는데 있습니다.
특히 통일문제의 딜레마,중국.일본.미국등에 대한 한국인들의 태도,핵무기에 대한 인식등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한=이번 조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입니까.
펍킨=우선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전반적으로 높지 않습니다.
이런 부정적 태도는 좌익급진주의의 영향 때문이라기보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상당히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정민박사=한국인들은 통일문제,외교.안보사안등에 대해 매우 현실주의적 접근을 하면서 동시에 상호모순된 이중 잣대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컨대 응답자들은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27.3%) 지나친 대미의존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의 통일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이 지속될 것이라는 응답이 95%에 달해 중국이나 러시아.일본보다 훨씬 높은 것도같은 맥락입니다.
이는 한반도 주변 주요국가의 역할을 현실로 인정하면서도 민족주의 감정이 강렬한 점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조사를 통해 한국인들은 아직도 세계를 단편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다양한 사안을 수평적으로 연계시켜 보는 능력이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펍킨=한국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응답도 같은 경향을 보여주고있습니다.
한국이 통일후에도 핵무장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80%며 일본이 무장할 경우 핵무장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90%에 달합니다.
또 한.미 안보동맹은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방지하는데 그 역할이 있다는데 공감하는 응답자가 많은 반면(80%) 중국은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향후 군사안보의 주요 위협국가로 일본을 지목한 응답자들(54%)이 중국을 지목한 응답자(32.9%)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한국인에게 중국은 미래의 경제적 라이벌일 뿐이지만 일본은 여전히 한국의 잠재적 안보위협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통일후 비용문제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32%가 군사비용의 절감을 통해 조달해야 한다고 밝힌 반면 통일후 어떤 형태의 군사력을 보유해야 하느냐의 질문에 대해서는 30%의 응답자들이 국방예산을 늘려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또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한국도 가져야 한다는 수치(92%)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더라도 아시아 대국들을 경계하기 위해 자위용으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응답자가 81%에 달하는 것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폴락박사=결국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모순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한가지 사안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다른 사안들과의 맥락이 단절돼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셈입니다.
특히 핵무기 보유여부를 묻는 응답에서 나타난 것처럼 한국인들은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열망과충동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핵무기 보유여부에 대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정부차원의 정책논의나 흐름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결국 이같은 응답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입니다.
한=랜드연구소가 89년 이후 통일독일에서 다년간 조사한 결과와 이번 한국에 대한 조사결과를 비교한다면.
폴락=랜드연구소는 통일에 대한 독일인들의 태도를 통일시점 이후 매년 조사해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아직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양측간 비교가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독일은 통일 이전부터 상당한 교류가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동서독은 보다 성숙한 관계정립 과정을 거쳐 서로 인정해왔으며동독인들은 TV등 미디어를 통해 서독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동독인들은 서구에 대해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또 독일은 한국에 비해 보다 국제적 관점에서 자리매김해 왔다고 보입니다.
반면 한국은 이번 조사에서 나타난 대로 세계화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지만 아직 그와 같은 작업이 궤도에 오르지 않은 상태라는것입니다.양측의 정치.경제.지정학적 환경차이도 한국과 독일간 여론조사의 단순비교를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통일후 中위협 경계 한=통일에 대한 국민의 태도는 특정한 어떤 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보여왔습니다.
예컨대 북한의 잠수함 침투도 이같은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김=지난 9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반드시 통일돼야 한다는 견해가 44%였으나 잠수함사건 이후 37%로 감소했습니다.또 독일이 통일된 것도 한국에 생각만큼 많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다만 영향을 준 것이 있다면 한국인들이 통일비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현상황에서 한국인들은 중국을 큰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지만일단 통일후에는 일본과 중국 양측이 모두 안보상 위협이 될 것으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중 하나는 완전한 통일이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북한이 10년이내에 붕괴할 것으로 믿는 응답자들이 많으며 이는 전문가들의 전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펍킨=응답자의 42% 미만이 10년이내에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응답했으며 극소수의 사람들만 통일이 임박했다(2.5%)고 응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이 이뤄지기까지 5년 이상 장기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직 통일에 대한 준비가 돼있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특히 통일문제에 대해 지적해둬야 할 것은 군사적 혼란 발생 가능성입니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 통일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0%가 경제문제라는 입장이고 25%가 정치,16%가 사회문제였으며 오직 8%만 군사적 문제라고 대답했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붕괴해도 가장 중요한 이슈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는 태도가 주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통일후 한.미 동맹에 관한 반응도 주목할 만합니다.
한.미동맹을 현재수준으로 유지하자는 쪽이 28%,동맹은 유지하되 주한미군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응답자가 40%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반해 25%는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통일한국이 역외국가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과거의 전통,필요성을 고려할때 그 대상은미국이 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정립 과정에서 한국 민족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美의 對北정책 불만 한=한.미 양국간 미래 안보협력과 관련,한국정부의 대미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이와 함께 한국 내부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너무 많은 양보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잠수함 침투사건이 일어났을때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한국측에도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해석돼 미국이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도 많았습니다.
이=한국인들은 미국이 이제 한국을 중립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그러나 미국은 거의 매일 한국을 지지하며 어깨를 나란히해 한국을 방위하겠다고 다짐하는 실정 아닙니까. 한국이 느끼는 또다른 좌절감은 한국군이 북한에 대해 독자적공격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이같은 한국의 공격이 북한의 도발에 대한 응징의 성격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軍작전권 회수 희망 한=서강대학교가 행한 다른 여론조사에 따르면 60% 이상이 작전권을 한국이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잠수함사건에서처럼 남한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는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유화적 태도를 취하는것으로 비칩니다.
한국의 안보가 사실상 북한의 인질로 잡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폴락=한국도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이 필요합니다.하나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그리고 주변국들이 어떤 접근을 할 것인지 충분히 예상한 전략적 고려를 해나가야 합니다.
한=좌담회 참석자들은 모든 사안을 전략적 차원에서 고려,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장기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미국이 냉전의 절정기에서도 두가지 정책을 써왔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레이건의 「쌍둥이정책」,즉 군비통제와 군비증강이 동시에 옛 소련을 변화시켰다는 점도 그 의미가 적지 않습니다.
북한을 다룰 때도 이 문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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