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부패스캔들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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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로 1919년 월드시리즈 결승경기가 손꼽힌다.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됐다는 시카고 화이트 삭스팀이 예상을 뒤엎고 신시내티 레즈팀에 패배했다.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이 도박꾼들과 야합해 그 게임을 일부러 졌다 는 사실이 밝혀져 8명의 선수가 기소됐다.화이트 삭스팀에 소속돼 있던 불세출의 야구선수 잭슨도 기소돼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그후그의 명성이 예전같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뇌물은 매춘과 함께 인류의 가장 오랜 범죄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어느 사회도 부패(腐敗)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미국같은 나라에서도 부패스캔들 사례의 사전까지 편찬돼 있을 정도다.그러나 미국의 부패스캔들이 우리나라로 오면 별 로 순위에 들것 같지 않다.최근 우리 사회에서 계속 폭로되고 있는 부패사건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부패의 올림픽을 열고 있는 느낌이다.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이 폭로된 것이 바로 1년전이다.두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아직 재판을 받고있다.이른바 율곡사업비리는 10만양병론을 주창한 이율곡(李栗谷)선생의 이름에 큰 욕이 될 정도로 신 성한 국방예산을 마구 노략질한 사건이다.비교적 최근만 해도 「공정」해야 할 공정거래위의 간부들,「감독」하는 자리에 있는 증권감독원장,「교육」의 책임자인 교육위원등 이나라 부패스캔들의 시나리오에 등장하지 않을 인물은 없을 기세다.
이번 무대에 오른 주인공은 이양호(李養鎬)전국방장관이다.정체불명의 무기상을 사이에 두고 국방장관.재벌회사 사장.전(前)대통령의 딸이 무대에 등장해 폭로와 부인,재반박의 공방전으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더니 결국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그러다가 이제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시상이 로비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을 받고 검찰이 수사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이제 이 사회에 썩지 않은 곳을 찾는다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일까.부패와 함께 숨쉬고 살 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의자화상이다.
이 「부패공화국」의 실상을 「신한국병」으로 진단하고 강력한 사정(司正)정책을 편 정부의 초기정책에 국민들의 박수가 터진 것은 그만큼 부패추방에 대한 국민들의 열의가 높았음을 증명한다.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지금 그러한 환호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금융실명제.공직자재산등록제는 국민이 바라던 개혁이고 전진이었다.그러나 전문가들이 부패추방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돈세탁방지.내부고발자보호제도가 방치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투명행정을 위해 도입한 다던 정보공개법은 「정보불공개법」으로 변한채 낮잠을 자고 있는지 오래다.
사실 부패라는 독버섯은 어두운 곳에서만 자란다.어두운 곳을 밝은 햇빛아래 드러냄으로써 부패는 사라질 수 있다.아무도 근접하기 어려운 국방예산은 그래서 더욱 부패의 소지가 많다.그 국방예산이 동해에 간첩선이 나타나자 대통령의 말 한 마디로 12%가 증가되고 국방부가 2천억원을 더 요청해 전체 13조9천억원으로 늘어나 있는 상태다.이 가운데 또 얼마나 많은 돈이 「떡고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몇차례의 공직자재산등록으로 웬만한 고위공직자의 재산이 수십억원이 되는 것을 보고 국민들은 놀랐다.『정치가가 부유하면국민이 가난하게 되고,정치가가 가난하면 국민이 부자가 된다』는전 영국총리 윌리엄 피트의 말대로 그 나라 총 리들은 사임하면서 다우닝가10번지 총리관저에서 전세로 옮겨가는 것을 영광으로생각한다.뻔한 공무원 월급을 잘 알고 있는 국민에게 그같은 공직자들의 엄청난 재산은 의혹의 대상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난 19일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는 비자금사건 1주년을 기해 서울역에서 부패추방캠페인을 벌이면서 거리여론조사를 했다.지난 1년간의 비리수사결과 부패가 「발본색원됐다」거나 「만족한다」는 겨우 5%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 95 %는 불만족이거나 진상규명에 실패했다고 답변했다.서울역을 배회하는 술주정뱅이에서부터 지나가던 시골 촌로(村老).샐러리맨까지 다 참여했으니 진짜 민심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민심이 천심이다.정부는 민심이 부르는 개혁과 사정의 길로 되돌아와야 한다.
朴元淳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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