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금 고객 '콧대' 하늘 높은 줄 모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앙포토]

“손님은 ‘진짜’ 왕이다.” 최근 은행권에서 돌고 있는 말이다. 세계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은행들 사이에선 고금리로 고객을 모시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융회사들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금 유치를 위해 잇따라 정기예금 금리를 올리고 있다. 겉으로는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안개증시’ 때문에 안전하게 돈을 묻어둘 곳을 찾는 고객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고객들의 콧대 만큼은 사뭇 높아졌다는 것이다.

서울 중구의 한 은행 직원은 “7%대의 높은 금리를 드리기 때문에 우리 은행에 예금하시라"고 고객에게 설명했지만 “‘됐거든요. 요즘 8% 금리 주는곳이 얼마나 많은데’라며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푼의 이자라도 더 받기 위해 발품을 판다. 최근 금융업계에 따르면 시중 은행권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연 7%, 저축은행의 경우는 연 8%를 넘어섰다.

◇은행권의 ‘어깨 힘 빼기’=은행들이 고금리 예금상품을 내놓으며 자금을 비축하려 하고 있다. 개인 고객의 푼돈에 대해선 ‘적당히’ 대접했던 예전 분위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을 방문한 주부 이지영(30)씨는 “펀드에서 일부 환매한 300여만원을 예금하러 갔더니 지점장이 직접 나와 VIP룸으로 모시며 차를 대접했다”며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던 과거와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예금 금리를 알아보기 위해 한 저축은행을 찾은 직장인 이희수(30)씨는 “은행 직원이 다음 주에 금리가 또 오를 예정이니 힘들게 다른 곳을 찾지 말고 일단 우리 통장에 예금한 뒤 갈아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주일에 세 번 갈아타기=자고 일어나기가 무섭게 예금 금리가 오르자 일주일에 두세곳을 오가며 예금처를 갈아타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불과 1~2일 사이에 금리가 인상되자 기존 예금을 해약하고 재가입하는 경우다. 한 저축은행은 열흘 단위로 정기예금 금리를 0.2~0.3%포인트씩 올리기도 했다. 직장인 정미라(35)씨의 요즘 취미는 ‘은행 가기’가 됐다.

정씨는 지난 주 500만원의 목돈을 A 시중은행에 맡겼는데 이틀 뒤 B 시중은행의 금리가 더 높아진 사실을 알고 바로 갈아탔다. 하루 뒤 C 저축은행의 예금 금리가 가장 높다는 말에 그곳을 최종 ‘안식처’로 삼았다. 정씨는 “귀찮긴 하지만 한두푼이 아쉬운 마당에 어디를 못가겠느냐”는 반응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매일 오르며 은행끼리 경쟁이 붙자 다른 예금으로 갈아탈 것으로 보이는 고객에겐 우리 상품의 금리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해준다”고 말했다.

◇6개월짜리 찾기=어떻게 될지 모르는 금융시장 덕에 ‘예금 금리는 만기가 짧은 것보다는 긴 것이 금리가 높다’는 상식이 거꾸로 가고 있다. 다수의 은행들은 1년 만기 예금 금리보다 6개월 금리를 더 높게 책정했다. 돈이 오랫동안 묶이는 부담을 보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기간이라도 일단 고객의 돈을 유치하자는 이유에서다. 고객 역시 시장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단기로 자금을 운용하다 증시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바로 통장에서 돈을 빼야하기 때문에 단기 예금통장을 이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솔로몬저축은행의 6개월 정기예금 금리는 연 7.9%로, 1년 예금(연 7.6%)보다 0.3%포인트 높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도 6개월 정기예금 금리가 연 7.7%로 1년 정기예금 금리 연 7.5%보다 0.2%포인트 높다. 하나은행이 최근 선보인 6개월 특판예금 금리는 최대 연 7.19%로 1년 만기 정기예금의 고시금리 5.9%보다 훨씬 높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장기 적립식 주식형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을 내놓았지만 예금자보호가 적용되는 은행권 상품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과 은행권의 혹한을 대비한 '실탄' 비축으로 고객의 콧대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지은 기자

[J-HOT]

▶29조원 들여 만드는 '석유 필요 없는 도시'

▶세계 경제 2위, 일본도 심상찮다

▶'정상' 진단받고 안심했는데 일년 뒤 '위암 4기'라니

▶50m 높이 제철소 고로에 선 정몽구 회장

▶"총리가 美대통령에 재롱떠는 나라가 일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