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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법 제정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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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모든 것은 조물주의 손으로부터 나올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선하나 인간의 손안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타락한다." 루소는 명저 '에밀'의 첫 문장을 이렇게 썼다.

몇년 전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킨 데 이어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든 황우석(서울대 수의과대학)교수는 인류 역사의 신기원을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배아줄기세포란 인간의 난자에서 채취한 세포 또는 이 세포의 분열로부터 생겨난 세포로서 어떤 유형의 인간세포로도 분화될 수 있고 자기복제 능력을 유지하는 것 또는 그러한 유형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것을 말한다. 즉 뇌.간.신장.심장.눈.귀.자궁 등 모든 장기로 분화할 수 있는 세포로서 이들 장기에 문제가 생기면 대체할 수 있는 장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어쩌면 인류는 모든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복제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우성인류와 열등인류로의 분화 혹은 서로 교미생식이 불가능한 인류의 탄생, 불로불사의 인간이 태어날 날도 머지않은 것이다. 많은 과학자가 신천지를 꿈꾸며 연구하고 있는 생명의학 분야의 결과물이 어떻게 이용될지 그들조차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관한 그 모든 것이 조물주의 손이 아닌 인간의 손안에 점점 들어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연구.활용은 생명의학 분야에 큰 발전을 가져올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많은 국가가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으며, 생명과학자들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상상하기도 힘든 많은 것이, 사회적인 합의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과학자들의 작은 실험실 안에서 진척돼가고 있다.

黃교수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현재 만들어진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우리 사회가 그 과학적 성과물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아무런 합의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과학적 진보만 이루어졌다는 방증이다. 서구국가나 일본은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이용과 연구 과정에 대한 세부적인 지침을 정부 차원에서 마련하고, 일부 국가는 생명윤리법을 제정하는 등 윤리 문제를 일찍부터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 윤리성이 전적으로 과학자 개인에게만 돌려지고 있다.

최근 들어 네이처(Nature)지가 黃교수 연구팀의 실험연구원이 난자를 제공했다고 실험과정에 대한 윤리 문제를 거론해 논란이 되고 있다. 물론 黃교수 측은 연구원이 인터뷰할 때 영어소통이 잘 안돼 그렇게 잘못 이해된 것이라며, 반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黃교수가 난자제공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이상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네이처가 경쟁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대한 시샘이나 동양인 과학자의 과학적 성과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시샘으로만 돌리거나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만 빠지는 것보다 이런 계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 내부를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특히 인간배아줄기세포가 인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줄기세포의 활용과 연구 과정에서의 윤리성을 어떻게 담보할지에 대한 시민사회의 합의를 도출하고 생명윤리법을 시급히 제정해야 할 것이다. 인간배아줄기세포의 사용요건 혹은 금지요건을 명확히 하고 이것을 연구하고 취급할 수 있는 기관이나 책임자의 자격요건, 연구성과의 공개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인간배아줄기세포를 만들려면 난자 제공은 필수적인데 제공자가 불리한 위치에서 제공하지 않게 하고, 충분한 설명을 해준 뒤 동의를 하게 하고, 제공자의 개인정보를 제대로 보호하는 내용이 포함돼야 한다.

김태환 서울종합동물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