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정유업계의 '보이는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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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애덤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질서를 말했다.이 질서는 경쟁이 이루어내는 변증법적이고 동학적(動學的)인 질서다.경쟁이 질서를 만들고,경쟁만이 질서를 만드는 것이 자유시장경제다.이 이치를 설명하는 어떤 말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한마디 말이 신비한 설득력을 행사해 왔다.경쟁은 곧 무질서일 것이라는 전제권력에 순치(馴致)된 등식(等式)으로부터의 저항을 가볍게 피하는데도 이 말은 주술(呪術)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경쟁이란 것은 무질서의 다른 말이다」라고 편리할 때마다 통하고 있다.그래서 그냥 경쟁이라고 하는 대신 언필칭 「과당경쟁」이라고 부른다.경쟁이 경제의 균형과 최적(最適)을 연출한다는 경제학 교과서 따로,경쟁은 무질서라는 권위주의적 등식 따로,여기서 생기는 갈등을「과잉」이라는 매김말이 눈가리고 아웅하게 해 준다.그 덕에 수많은 미제(美製) 경제학 박사들도 정권이나 금권에 몸을 들여놓으면 「경쟁은 무질서다」론자로 쉽게 복귀할 수 있는 것이 다.
내년 초부터 실시될 예정이던 석유류값 전면 자유화 계획이 보류될 것이라는 뉴스가 최근 한 경제신문에서 톱기사로 출회됐다.
국내 석유류값을 자유화하면 과당경쟁의 여파로 석유류 수출 경쟁력이 손상될 것이라는게 보류론의 이유다.안 그래도 극심한 저(低)마진에 시달리고 있는데 과당경쟁이 「불을 보듯 뻔하게」벌어질 자유화라는 판을 벌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실은 경쟁은 격하면 격할수록,열이 나면 열이 날수록 좋다.이점에서 경제는 프로축구 시합과 같다.짜고 차거나 몸을 사리는 축구는 아무 재미가 없다.좋은 축구란 격하고 열이 나는 경기다.그래야만 관객에게 좋은 것은 물론이다.장기적으 로는 구단과 선수들에게도 절대 이득이다.관객이 외면한 경기는 설 자리가 없어지거나 다른 나라 팀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기 때문이다.
경쟁 대신 찬양 고무되는 것이 자율조정이다.자율조정이야 말로질서라고 보는 것이다.그러나 자율조정은 명백한 경제적 죄악이다.다른 말로 하면 독점을 위한 담합이다.생산자가 담합을 하면 손해보는 것은 소비자다.어떤 사람은 국내 시장에 서는 경쟁을 하고 외국 수출에 대해서는 담합을 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날 만큼이라도 수출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해외시장에서 국내 업자들끼리의 피나는 가격.품질 경쟁이 있었던 덕택이다.담합을 하면 한번에 그 장사는 끝난다.외국 수입업자는바지 저고리가 아니다.담합 사실은 곧 알려지게 되고, 그 품목이 기술이나 가격에서 우리나라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그 상품을 더이상 사지 않게 된다.
더 나쁜 것은 우리나라 내부에서 생긴다.생산자끼리 담합을 하게 되면 우리나라의 제품 경쟁력이 가격과 품질에서 슬슬 사그라지고 만다.축구선수에게서 근육은 사라지고 똥배가 나오는 것과 같다. 국내 석유류값이 경쟁 때문에 내려가면 왜 국제경쟁력이 없어질까.다른 것이 아니다.국내 소비자에게는 비싸게 팔아 그 돈으로 치열한 국제시장에서 실력이 없어서 보는 손해를 벌충하는것이 지난날 해온 버릇이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장사하겠 다는 것을 우물쭈물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그 바람에 비싼 값을 치르는 국내의 소비자는 안중에 아예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서슬이 시퍼렇고,항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될 지금은 국제시장에 서도 통할 수 없는논리다. 그런데 정유업자.에너지경제연구원.통상산업부가 전부 달려들어 석유류값 전면 자유화 계획을 보류하는데 능동적으로 또는수동적으로 공조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 특히 괘씸한 것은 업자들이다.그들의 표준은 너무도 이중적이다.정부에는 기업의 자유를 말하고 국내 소비자에게는 담합의 정당성을 강변한다.이래서는 기업이 자유를 구가할 때 소비자가 동조할 리가 없다.
과당경쟁이란 경쟁을 심하게 할 때 나쁜 것이 아니라 경쟁의 규칙을 위반할 때만 나쁜 것이다.자율조정 또는 담합이야 말로 전형적인 규칙위반이므로 또한 나쁜 「과당경쟁」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우울한 면모는 정부.기업.
노동조합 할것 없이 기회만 있으면 「보이지 않는 손」의 손목을끊어버리려고 획책한다는 사실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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