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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산마을>31.남원시 동면 성산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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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정말 흥부마을 같았다.마을 뒤쪽으로 제비가 날아간다는 연비봉(燕飛峰)이 있고 마을 안쪽 자그마한 호수엔 흥부각이 서있다.
근처엔 놀부의 무덤이라는 박첨지묘가 자리잡고 있다.마을어귀에있는 돌장승과 서낭당도 예사롭지 않았다.
무엇보다 흥부마을을 실감케하는 것은 마을사람들이 죄다 그렇게믿기 때문이다.외지사람들은 대개 의심을 품고 마을에 들어서지만마을사람들에게 곧잘 설득당한다.게다가 경희대 민속학연구소가 현지답사를 통해 만든 보고서를 보여주면 더이상 의심하는 것이 미안할 지경이다.성산리(전북남원시동면)는 흥부마을이라 불린다.
성산리는 남원시와 함양군을 가르는 지리산의 야트막한 고개인 팔랑치 위쪽에 자리잡고 있다.흥부마을의 신화는 이 지형에서부터나온다.판소리 『흥부가 제비노정가』 사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전라도는 운봉이요,경상도는 함양이라.운봉.함 양 두얼품에 흥부가 사는지라.」 남원의 옛이름이 바로 운봉이다.성산리는 남원과 함양이 맞닿은 곳이다.또 이 마을에는 박첨지 전설이 내려온다.박첨지는 전라와 경상에 땅을 많이 가졌던 욕심많은 지주로민란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이 박첨지가 놀부의 모델이라고 마을사 람들은 본다.
성산리에 사는 최만수(69)씨는 『어릴적 동네어른들에게서 성산리가 흥부전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崔씨는 『동네에서 삼월삼짓날 항상 제사를 지내는데 그날이 제비가날아오는 날과 일치하는 것을 보면 이곳이 틀림없 는 흥부마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성산리가 흥부 탄생지로 공인받기까지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남원시아영면 성리쪽에서 자기네 마을이 흥부마을이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성리에도 흥부와 관련된 설화가 똑같이 존재한다.성리에는 춘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선한 성품이나 인생역정,그리고 이름의 유사성으로 미루어볼 때 흥부의 모델로 추정된다.
그는 큰 부자가 된뒤 가난한 사람을 도왔고 마지막 엔 자신이 데리고 있던 노비들을 방면해주었다고 한다.그래서 그가 죽고난 뒤 성리마을 사람들은「춘보망제」를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그러나 결국 논쟁은 교통정리가 됐다.남원사람들은 이 춘보가 원래 동면성산리에서 형 박첨지와 함께 살다가 형에게서 쫓겨나 유랑끝에 성리에 정착했다고 보고 있다.말하자면 성산리는 흥부가태어난 곳이요,성리는 흥부가 옮겨가 돈을 번 복 덕촌(福德村)으로 서로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요즘 성산리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눈코 뜰새가 없다.
흥부 출생지인 이곳을 소공원으로 조성해 관광지로 만들기 위한작업이 한창이기 때문이다.지난해부터 흥부.놀부집과 정자.연못.
수로등을 만들고 있다.
시비 22억3천만원을 들여 98년 완공예정인데 이를 바라보는마을사람들의 마음은 묘하다.개발을 통해 자신들의 소득이 늘어나는데는 찬성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을이 훼손되지나않을까 걱정하고 있다.해발 5백가 넘는 곳에서 고즈넉이 살아왔던 성산리에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글=하지윤.사진=임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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