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원짜리 점심, 6000원짜리 저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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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호 15면

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했다. 롯데호텔 35층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20만원이나 하는 런치 코스 요리를 즐겼으니 아주 특별하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 등급인 세 개의 별을 받은 요리사다. 이른바 ‘미슐랭 3스타 셰프’다. 그가 아시아에서는 도쿄와 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의 롯데호텔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연 것이다.

요리는 두 시간에 걸쳐 제공됐다. 먹어 본 느낌을 묻는다면 나는 한숨부터 쉴 수밖에 없다. 코끼리를 처음 본 원시인이 코끼리를 본 적 없는 부족 친구들에게 코끼리 모습을 묘사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는 80여 가지 프랑스산 식자재, 세계 최고의 명품 기물들, ‘짠맛의 초콜릿’처럼 상식의 따귀를 때리는 미각의 충격, 감자처럼 익숙한 식재료가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극적 반전, 서로 다른 질감의 재료가 입 안에서 만나 또 다른 느낌을 만들며 녹아 내리는 맛의 변증법, 건축적 식자재 배치와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대담하게 흩뿌려진 소스들. 헉헉! 내 능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오늘 점심에 나는 요리를 먹지 않고 미각 예술을 향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은 평범했다. 난 회사 근처 기사식당에 홀로 앉아 6000원짜리 ‘왕돈까스’를 썰었다. 점심과 저녁이 어쩌면 이렇게 다른가. 12시가 지나고 마법은 풀렸다. 신데렐라의 황금마차는 호박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피식, 나는 웃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 차리자. 난 잠시 상경해 63빌딩 보고 놀란 다음 통통배 타고 돌아온 낙도 어린이야. 괜히 비참해지지 말자고.” 다행히 나는 그런 다짐을 거듭할 필요도 없이 그 크고 두꺼운 왕돈까스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잠깐의 호사가 지난 다음 찾아온 일상다반사를 배부르게 즐겼다.

오늘의 두 끼 식사는 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거울처럼 보여 주었다. 나는 감각과 인식과 영감을 확장시켜 주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각오할 용의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경험을 자주 시도할 수 없는 상황과 내 처지에 맞는 의생활·식생활·주생활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거리낌 없이 넘나들면서 그것을 즐기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라고.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가 식자재와 조리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듯.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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