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은 아주 특별했다. 롯데호텔 35층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20만원이나 하는 런치 코스 요리를 즐겼으니 아주 특별하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피에르 가니에르는 가장 권위 있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의 최고 등급인 세 개의 별을 받은 요리사다. 이른바 ‘미슐랭 3스타 셰프’다. 그가 아시아에서는 도쿄와 홍콩에 이어 세 번째로 서울의 롯데호텔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연 것이다.
요리는 두 시간에 걸쳐 제공됐다. 먹어 본 느낌을 묻는다면 나는 한숨부터 쉴 수밖에 없다. 코끼리를 처음 본 원시인이 코끼리를 본 적 없는 부족 친구들에게 코끼리 모습을 묘사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설명을 들어도 알 수 없는 80여 가지 프랑스산 식자재, 세계 최고의 명품 기물들, ‘짠맛의 초콜릿’처럼 상식의 따귀를 때리는 미각의 충격, 감자처럼 익숙한 식재료가 전혀 다른 맛을 내는 극적 반전, 서로 다른 질감의 재료가 입 안에서 만나 또 다른 느낌을 만들며 녹아 내리는 맛의 변증법, 건축적 식자재 배치와 잭슨 폴록의 그림처럼 대담하게 흩뿌려진 소스들. 헉헉! 내 능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오늘 점심에 나는 요리를 먹지 않고 미각 예술을 향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 저녁은 평범했다. 난 회사 근처 기사식당에 홀로 앉아 6000원짜리 ‘왕돈까스’를 썰었다. 점심과 저녁이 어쩌면 이렇게 다른가. 12시가 지나고 마법은 풀렸다. 신데렐라의 황금마차는 호박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피식, 나는 웃었다. “내가 왜 이러지? 정신 차리자. 난 잠시 상경해 63빌딩 보고 놀란 다음 통통배 타고 돌아온 낙도 어린이야. 괜히 비참해지지 말자고.” 다행히 나는 그런 다짐을 거듭할 필요도 없이 그 크고 두꺼운 왕돈까스를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잠깐의 호사가 지난 다음 찾아온 일상다반사를 배부르게 즐겼다.
오늘의 두 끼 식사는 내가 지향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거울처럼 보여 주었다. 나는 감각과 인식과 영감을 확장시켜 주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각오할 용의가 있다. 그러면서도 그런 경험을 자주 시도할 수 없는 상황과 내 처지에 맞는 의생활·식생활·주생활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 두 가지 삶의 방식을 거리낌 없이 넘나들면서 그것을 즐기는 데 인생의 묘미가 있는 것이라고. 피에르 가니에르의 요리가 식자재와 조리법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듯.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