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호 한양대 체육위원장, 자비 들여 40년째 고향서 ‘배구 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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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말에 ‘벌교 가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완력이라면 한 가닥 하는 벌교 출신인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 년에 딱 이틀, 남도사람들이 완력을 자랑하러 벌교에 모인다. 해마다 10월 중순 열리는 청호기 배구대회다. 1969년 시작된 청호기 대회가 올해로 40회를 맞는다.

출범 당시에는 벌교읍내의 조그마한 동네축제였지만 지금은 벌교와 보성군을 넘어 남도의 대표적인 지역 스포츠축제로 성장했다. 18~19일 이틀간 열리는 올해 대회에는 전남·광주의 66개 9인제 배구팀이 참가한다. 대회명인 청호기는 대회장인 조영호(60·사진) 한양대 체육위원장의 아호(靑湖)에서 따왔다. 창설 초기에는 ‘조영호배’였던 것이 나중에 ‘청호기’로 바뀌었다. 40년 전 생긴 대회이니 당시 그의 나이 약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을 딴 대회가 생긴 이유는 이렇다. 170㎝가 조금 넘는, 그리 크지 않은 조 위원장은 10대 시절 벌교지역에서 명성을 날리던 9인제 배구선수였다. 하지만 작은 키 때문에 6인제 정식선수는 되지 못했다. 조 위원장을 아깝게 여겼던 동네 유지들은 그가 서울로 유학을 떠난 뒤 그의 이름을 딴 동네 배구대회를 만들었다. 이후 조 위원장은 사재를 털어 대회를 유지하고 있다.

한양대에 진학한 조 위원장은 총학생회 부회장이던 4학년 당시 한양대 배구팀 창단에 깊숙히 간여했다. 카리스마와 친화력을 모두 갖춘 그는 학생 신분임에도 당시 고교배구 명문이던 인창고를 찾아가 창단멤버를 스카우트 해오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한양대는 이후 강만수,김호철,하종화,김세진,이경수 등 한국배구사에 한 획을 그은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했다. 선수로는 빛을 보지 못했던 그는 70년대 심판에 입문, 한국 최초의 국제배구연맹(FIVB) 국제심판을 지냈고 1984년 LA부터 96년 애틀랜타까지 올림픽 4개 대회 연속으로 심판을 맡았다.

89년에는 FIVB가 주는 세계 최우수심판상도 수상했다. 조 위원장은 “배구는 어떤 스포츠 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배구를 통해 지역주민들의 화합에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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