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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시장경제 몰락’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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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 세계적으로 산불처럼 번지던 미국발 금융위기가 소방 당국의 진압작전에 힘입어 일단 주춤해 있는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930년대 경제공황의 경우와 달리 신용경색의 위험을 꿰뚫어본 소방 당국, 즉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 당국자들이 과감한 응급조치를 취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잔불의 불씨들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고, 불똥이 실물경제로 옮겨 붙는 조짐마저 보인다.

금융불안이 해소되고 세계경제가 정상 성장궤도에 진입하기까지 시일이 걸리겠지만, 그 속도와 범위는 향후 금융산업의 개편과 통화신용정책의 행방이 좌우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구조 개편, 금융감독의 강화, 유동성 조정과 같은 문제가 핵심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먼저 이번 사태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파산을 의미한다는 견해를 따져보자. 사태 초기에 유럽 국가에서 제기되고 반미 성향의 인사들이 선호한 이 주장은 부실 주택금융, 느슨한 통화신용정책, 과잉 가계부채와 같은 ‘미국 문제’가 유럽 국가나 다른 개발도상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임이 드러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파생상품 시장의 과열을 탓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것이 부실 주택금융의 단초를 제공하지도 않았고 위험 상쇄 기능도 가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오류는 이 금융위기가 국제화와 탈규제로 고삐가 풀린 금융시장의 실패, 나아가서는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입증한다는 견해다. 일부에서는 이제 자유시장 경제체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고, 국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그간 수세에 몰려있던 좌파 논객들은 이를 국면 전환의 기회로 보는 듯하다.

이는 터무니없는 왜곡이다. 부동산시장의 거품 가능성은 십여 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고, 시장지표가 비이성적 환호(irrational exuberance)를 경고하고 있음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다수의 경제학자·전문가들은 현 사태가 경기둔화를 우려해 신용확대로 시장의 자율 규제 기능을 봉쇄해온 통화신용정책의 실패에 있음을 알고 있다. JP 모건의 조지 쿠퍼가 지적한 대로 시장 침체기에만 개입하고 과열시장은 방치한 중앙은행의 비대칭적 개입정책이 거품을 진정시키는 시장의 정상적 작동을 봉쇄해 왔고, 이는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이런 시장환경은 금융기관들이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도록 부추기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심화시키고, 고수익 부실 주택금융의 양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다수 학자·전문가들의 실수는 금융시장 왜곡의 파장이 이토록 심각할 수 있음을 몰랐다는 점이다. 작금의 사태는 시장이 누적된 왜곡 현상을 한꺼번에 몰아서 해소하는 과정이며, 시장의 작동을 보여주는 무서운 증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각국에서 도입하는 구제금융조치(Bailout Plans)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상시 개입을 예고하거나 이를 정당화하는가? 전자에 대한 대답은 전적으로 해당 국가의 정치적 선택에 달려 있지만, 후자는 ‘아니다’일 것이다. 이러한 구제금융 조치들이 시장을 왜곡해온 정책을 정상 상태로 되돌리려는 긴급조치임을 감안하면 이는 자명하다. 긴급조치는 불을 끄는 데 국한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를 단행한 조치를 보고, 금융시장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영국식 모형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영국의 브라운 총리는 “한시적 긴급조치며, 가능한 한 빨리 민영화할 것”이라며 이 같은 시각을 부인한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은 이들 긴급조치가 가능한 한 빨리, 후유증 없이 원상 회복되는 일이다. 특히 구제금융이 초래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 문제를 최소화하는 일, 보다 정교하게 금융감독을 강화하는 문제,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정치적 압력을 차단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장대홍 한림대 교수·재무금융학

[이슈] 미국발 금융 쇼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