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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시인의 애절한 사부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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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 박진식 시인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가며 물을 마시고 있다. [양광삼 기자]

아버지, 뭐가 그리도 즐거워

함박 웃음을 짓고 계시나요.

시커먼 얼굴에 윗니도 한개 없고

주름살만 쭈글쭈글한 얼굴이

당신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여실이 보여주고 있는데-

뭐가, 도대체 뭐가

그다지도 웃음짓게 하나요.

아버지,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시고

한 평생 궂은일만 하시느라

말씀도 잘 못하시는 우리 아버지

말없는 속내 대신 늘 멋쩍어 하시며

웃기만 하시는 우리 아버지

아버지 이제 당신은 병석에 누우셨지만

저의 기억 속 당신은 오늘도

쓰레기가 가득한 손수레를 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초췌한 그 등뒤에는

언제나 아픈 자식이 업혀 있습니다.

그 모든걸 그저 그러려니 떨치려 해도

머리 검은 짐승이라 엎드려집니다.

온 몸이 굳어 지면서 ‘돌이 돼 가는’희귀병을 앓는 시인’ 박진식(朴珍植·35·전북 순창군 순창읍)씨.박씨가 어버이 날을 맞아 공개한 ‘아버지 사진을 보며’라는 시 한편이 화제다.

부모의 고단한 삶과 이를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식의 서글픔을 표현한 시는 전신마비인 박씨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오른손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끼워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써낸 것이다.
게다가 이 시에는 애틋한 사연까지 담겨 있어 주변사람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박씨는 과잉 생산된 칼슘이 몸안에 쌓여 석회화 되는 ‘부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의한 각피 석회화증’을 30년 가까이 앓고 있다.초등학교 1학년때 발병하기 시작해 손·발을 비롯한 모든 관절이 점차 굳어지면서 온 몸이 ‘돌’로 변해 가는 병이다.

지체장애 1급으로 365일 항상 누워 지내는 탓에 어머니·아버지는 그의 손발이 돼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은 물론 손·발톱깎는 일까지 모든 일상사를 대신해 준다.

특히 아버지(67)는 20여년동안 어렵고 힘든 청소부생활을 하면서 집안을 꾸려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 12시면 일어나 쓰레기를 치우러 나가며 한결같이 아들 방에 들러 “아무리 흉측해도 내 곁에 살아있는게 효도”라며 박씨를 다둑이고 정성스레 간호해 주곤했다.

그런 아버지가 지난 1월 간성혼수로 쓰러지셨다.간기증이 저하돼 체내 독소를 제대로 해독하지 못하게 되면서 어지럼증으로 잠시도 서 있질 못하고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치매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세에 충격을 받은 박씨는 “내가 더욱 죄인인것만 같다”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하고 아버지 앞에서 그동안 마음을 아프게 할까봐 숨죽였던 눈물을 하염없이 쏟아 놓으며 목놓아 울었다.

그러나 울음소리에 정신이 든 아버지는 “그러면 너희 엄마는 어쩌라고-”하는 말을 던졌다.순간 박씨는 “절망에 빠져 부모님 가슴에 못을 박고 나 혼자만 도망가려고 했다”는 깨달음에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매년 어버이 날이 돌아오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맘뿐이지만 이런 아픔 속에 맞는 올 5월8일은 유난스럽게 느껴져 ‘사부곡’이라 할 수 있는 시까지 지었다”고 밝혔다.또 “아버지·어머니께 효도 여행이라도 한번 보내드리면 더 이상의 소원이 없을것 같다”며 이같은 사연을 담아 한 방송국의 편지 쇼에 응모를 한 상태다.

박씨는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시한부 삶을 살지만 사춘기때 시에 눈을 떠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2001년)’ ‘아버지,울었습니다(2003년)’ 등 시집을 펴 낸 어엿한 시인이기도 하다.

현재 생활은 생보대상자에게 나오는 월 20만-30만원의 정부 보조금으로 꾸려가고 있다.어머니(58)가 틈날때마다 날품과 식당잡일,행상 등을 하며 생계를 도왔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들과 갑자기 앓아 누운 남편때문에 올 들어서는 이마저도 그만둔 상태다.최근 병원을 다니면서 약물치료를 받는 아버지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전주=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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