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진료시대] 上. 원격 치료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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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한 동사무소 원격영상진료소에서 신술출(右·68)씨가 전문의(모니터 얼굴)에게서 진료를 받고 있다. 의사는 카메라 1로 환자를 보면서 환자와 간호사의 헤드폰 2을 통해 대화할 수 있다. 간호사가 사용중인 청진기는 전송 장치 3를 거쳐 환자의 숨소리가지 의사에게 또렷하게 전달해 준다. [안성식 기자]

지난 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동사무소. 12년째 고혈압을 앓고 있는 최순자(72)할머니는 익숙한 솜씨로 마이크가 달린 헤드폰을 쓴다.

앞에 놓인 PC 모니터를 향해 "안녕하세요"라며 꾸벅 절을 한다.

"혈압 수치는 나쁘지 않네요, 식사는 잘 하시나요?"

모니터에서 들려오는 질문에 "잘 먹죠. 약도 잘 듣는 것 같아요"라고 답한다.대화 상대방은 강남구보건소 황택근 의약과장(정형외과 전문의). 간단한 문진 (問診)이 끝난 뒤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된다.

崔씨가 "요즘 약간 숨이 가쁜 경우가 있다"고 호소하자 옆에 있던 간호사가 崔씨의 가슴과 등에 청진기를 댄다. 黃과장이 직접 청진기를 들이댄 것만큼 선명하게 崔씨의 숨소리가 들린다.

黃과장은 미심쩍은지 원격 확대경으로 崔씨의 목 안을 들여다 본다. 黃과장 앞의 모니터에는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목 안의 상태가 보인다.

15분 정도 진료가 끝나자 黃과장은 "예전과 큰 차이가 없어요. 괜찮으시네요"라며 고혈압 약을 처방한다. 崔씨는 동사무소 프린터로 나온 처방전을 받아 인근 약국으로 향했다.

정보기술(IT)이 바꾸는 e-의료의 현장이다. 원격의료가 진료 패턴을 확 바꿔 놓고 있는 것이다.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맞댈 필요가 없다보니 진료시간을 대폭 줄이고 공간의 제약마저 훌쩍 뛰어넘는다.

◇확산되는 원격진료=지난해 10월 의료법시행규칙이 바뀌어 원격진료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양지리와 갈말읍 정연리 등은 철책선에 인접한 오지마을. 이 곳 주민들은 지난 2월 말부터 버스를 한 두시간 타고 읍내 병원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됐다.

양지리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서 읍내 보건소 의사에게 원격진료를 받는다. 방식은 서울 강남구와 비슷하다.

고혈압 환자인 전미영(50.여.동송읍 이길리)씨는 "병원 가기가 어려워 제대로 진료받지 못했으나 원격진료를 이용하면서 주기적인 관리를 받게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강원도 내 정동진 마을.횡성군 갑천면 등 12곳의 오지마을이 원격진료 혜택을 보고 있다.

벽지의 병원에서 촬영한 X선.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촬영(MRI) 등 영상 필름을 디지털 정보로 바꿔 서울 등지의 방사선과 전문의에게 전송해 실시간으로 판독하는 진료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방사선과 전문의가 없는 강원도 양구 S병원은 서울의 판독 전문의원인 '엑스레이21'에 보낸다.

종전에는 필름을 모아 뒀다가 3~4일에 한 번 춘천 등지의 전문의를 찾아갔으나 이제는 촬영과 거의 동시에 전문가의 진단을 받는다.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도 있다. 시공원격영상센터(방사선과 의원)는 2002년 말 미국 버지니아 메디컬센터와 상대 병원의 필름 7000여건을 판독하기도 했다. 시차를 이용해 미국에서 밤에 응급 필름이 생기면 한국에서 판독한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한발 더 나아가 서울.대구.제주의 환자 3명에게 PC 카메라 등의 장비를 지급한 뒤 재택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서울대병원은 서울시내 노인복지관 한 곳과 연결해 진료를 받기가 힘들었던 치매환자를 원격진료하고 있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함명자 보건진료소장은 "병원에 가기 힘든 벽지 주민들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주민들이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병원에 가는 부대 비용이 줄고 원격 판독으로 질병 진단이 훨씬 빨라지는 효과도 있다.

서울 강남구보건소의 黃과장은 "원격진료하면 일반 진료보다 더 오랫동안 환자를 진료하고 대화도 많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계도 있다. 질병 상태가 비교적 안정돼 있는 고혈압이나 당뇨 등 만성질환자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원격진료는 이미 대세로 굳어져 다양한 분야로 확산될 전망이다. 강남구의 경우 올해 1~4월 수서동과 일원2동 동사무소 원격진료실을 방문한 환자는 1195명으로 지난 한 해 방문객(1164명)을 이미 넘어섰다.

신성식.이승녕 기자<ssshin@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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