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농촌초등 “어른들 함께 다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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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4일 김제시 원평초등학교의 별관 국악실. 강사 임현정씨의 “덩 덩 덩 더궁 따/덩 더궁 덩 더궁 따-”삼채장단에 맞춰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신나게 장구를 쳐댔다. 본관 2층 컴퓨터실에서는 30~40대의 아빠·엄마들을 위한 워드·엑셀 수업이 한창이었다.

사물놀이반 유기운(68)씨는 “농사짓다 화나는 일이 생겨도 장구채만 잡으면 싹 잊어버릴만큼 즐겁다”며 “일주일에 두번씩 풍물을 배우는게 삶의 낙”이라고 말했다.

농촌학교가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교문과 담장을 활짝 열어 제치고 취미·운동 등 다양한 강좌를 개설해 학부모·주민을 학교로 불러 들이는 등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으로 거듭나고 있다.

김제 원평초등학교의 사물놀이반 주민들이 임현정 강사(右)의 지도로 자진모리 장단을 익히고 있다. [김제=프리랜서 오종찬]


◆“엄마·할머니 함께 다녀요”=원평초등학교는 1~6학년 어린이 학생이 210여명, 어른학생이 180여명이나 된다. 지난해 ‘지역과 함께 하는 학교’로 선정되면서 아이뿐 아니라 아빠·엄마와 할머니·할아버지가 함께 다니는 학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수영·한글·컴퓨터·사물놀이·배구반을 다닌다. 수업은 1주일에 2~3회, 한번에 2~3시간씩 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수업료는 없다. 화·수·금요일에 든 수영반은 등록한 주민이 140여명이나 된다. “관절염·요통 등 노인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 멀리 정읍서도 찾아온다. 한글반은 60~80대 할머니 20명이 월·화요일 오후 3시부터 공부를 한다.

완주군 가천초등학교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요리·한글교실·컴퓨터·건강체조 등 9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원평초등 한글반의 이순례(73)씨는 “손자가 다니던 학교를 처음에는 가족들 몰래, 그것도 오리(2㎞)나 되는 먼 길을 걸어서 다녔다”며 “글자를 배워도 금세 까먹지만 70평생 처음 학교를 다닐 수 있게된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학교가 살아 났어요”=지역주민이 찾아 온 농촌학교는 활력을 되찾았다. 완주 가천초등학교의 경우 전교생은 30여 명에 불과하다. 2~3년전만 해도 “머쟎아 학교문을 닫을 것 ”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지역의 생활문화 공간’로 바뀌었다. 이 학교가 주도하는 강좌에는 경천면 전체 주민(1100여명)의 60~70%가 참여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완주 이성초는 전교생이 지난해 25명에서 1년 만에 114명으로 늘었다. 아이들 방과후 맞춤교육과 주민들 위한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하면서 전주·김제 등 인근에서 학생·학부모들이 몰려든 덕이다. 폐교대상이었던 학교가 활기를 되찾자 이에 감동한 동창회와 주민들은 앞다퉈 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최규호 전북도교육감은 “농촌학교들이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폐교위기를 벗어나 지역 사회의 생활문화 공간으로 자리는 잡는 등 성공적으로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장대석 기자 , 사진=프리랜서 오종찬

◆지역과 함께 하는 학교=평생교육진흥원이 지역주민들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지난해 9월부터 진행하고 있다.일선 시·군 교육청에 1억원씩을 지원해 각 지역별로 3~4개 학교를 뽑아 운영한다.현재 전국 120여개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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