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국가 장학정책 틀을 다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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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학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에서 등록금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높은 대학 진학률과 관계가 있다. 최근 통계를 보면 대학 진학률이 약 84%에 달하여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대학등록금 문제가 상대적으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계층의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대학등록금 문제가 단순한 가족 차원을 넘어 곧바로 사회적 이슈, 정치적 이슈로 떠오를 수 있는 폭발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학교육이 보편 교육이 될 만큼 많은 사람이 대학을 다니지만, 등록금 마련을 돕는 사회적 장치가 발달되지 못한 것도 대학등록금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로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 마련은 오로지 개인 책임으로만 치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고등교육 투자의 경제적·사회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학등록금 문제는 항상 대학 울타리 내의 문제로만 취급되어 왔다.

 대학등록금 문제 해결을 위한 첫걸음은 학자금 조달을 돕는 공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대학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는 ‘학력·경제력·정보력’의 세 가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 이 중 경제력과 정보력의 격차는 사회적 노력에 의해 상당 정도 좁혀질 수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한국장학재단을 내년 중 설립키로 했다고 그제 발표한 것도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다.

우리나라 학자금 지원사업은 지원 규모 자체가 작을 뿐만 아니라 분산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올해만 하더라도 정부 대학생 학자금 지원사업은 16개의 무상 장학금, 8개의 학자금 대출, 1개의 근로장학금 등 총 25개 사업이 7개 정부 부처에서 복잡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의 학자금 담당자조차도 학자금 지원제도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고, 대부분의 학생이나 학부모는 활용 가능한 학자금 지원제도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실정이다.

연간 2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예산이 학자금 지원 사업에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예산의 사용과 그 효과에 대한 사후평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장학사업과 학자금 지원사업을 총괄 관리하는 전문기구의 설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한국장학재단이 이러한 통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러한 기구가 있어 학자금 지원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어, 우리는 늦은 감이 없지 않다.

한국장학재단은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 사업을 통합 운영하고, 학생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다. 특히 맞춤형 원스톱 서비스를 통해 대학별 교육비용, 학비 조달 방법 및 학자금 상환, 학자금 대출, 학내외 근로 및 취업 기회 등에 관한 정보를 세세하게 제공함으로써 정보 부족으로 인해 대학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국가장학기금을 설치하고 대규모 기금 확충을 통해 학자금 수혜 폭도 크게 늘려야 한다. 재원조달 방식 역시 정부출연금·국채·재단채·민간 기부금 등으로 다양화하여 학자금 대출이자를 낮춤으로써 한국장학재단 설립이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력을 보완해 주는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국가장학사업은 단순하게 시혜적인 복지사업이 아니라 ‘가난하지만 잠재력을 갖춘, 그리고 학습의욕이 있는 학생’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투자 사업이다. 한국장학재단의 설립을 통해 대학 진학과 사회적 성공이 부모의 능력·가정적 배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에 의하게 됨으로써, 우리가 바라는 정의로운 생산복지 사회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연섭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