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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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나상록(羅常綠).
한.일비교 고대언어학을 한다는 학자가 켄트교수의 소개로 찾아온 것은 그 해 초겨울이었다.
『상록선생.「상록」은 본명입니까,호(號)입니까?』 을희의 물음에 우렁우렁한 소리가 돌아왔다.
『아무렇게나 생각하십시오.』 무쪽 같은 대답에 다시 쳐다봤다.햇볕에 그을은 검붉은 얼굴이지만 촌스럽지는 않았다.
딴은 그랬다.본명이든 호든 「이름」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또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무속(巫俗)관계 저서를 많이 내셨더군요.한.일비교 고대언어학 전공이시라 들었는데요.』 언어학관계 저서는 한 권도 없는 것이 기이했다.언어학자라기보다는 무속학자가 아닌가.
『책이야 껍데기에 지나지 않습니다.출판사는 장사될 만한 책 외엔 펴내지 않으니까요.』 스스로 퉁명스럽다고 느꼈는지 그는 한마디 덧댔다.
『한.일간의 고대무속을 좇다가 두 나라 고대어의 비교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언어는 모든 학문의 연결고리지요.』 출판사를 하다 보니 많은 학자.문인.예술가와 만나게 된다.직업상성격이 예민해 까다로운 것 같으나 모두 의외로 대나무 쪼개듯 선선했다.정작 까다로운 것은 그밖의 필자들이었다.
사시안적(斜視眼的)인 첫 인상과는 달리 나교수도 그랬다.그 산뜻함에 청결감을 느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청정감(淸淨感)」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남녀관계를 끊은 수도자가 풍기는 말간 바람 같은 것….
켄트교수의 간곡한 당부가 있어서인지 그도 선선히 원고를 써주기로 했다.
일본에 간 한국말-.
그런 내용의 책이었다.
『상대(上代)의 접시는 자라 등껍질이었습니다.최초의 제기(祭器)이기도 했지요.이 「자라」란 우리말이 일본에 가서 「사라(さら)」라는,접시를 가리키는 일본말이 됐습니다.우리말의 ㅈ(지읒)소리는 일본에 가면 대체로 ㅅ(시옷)소리로 변 하게 되지요.권유어의 「자!」는 「사(さあ)!」가,「자자!」는 「사사(さあさあ)!」가 됩니다.「잔다」는 뜻의 오늘날의 일본말은 「네루(ねる)」지만 고대어는 「사네루(さねる)」예요.일본학자들은 이「사(さ)」를 접두어(接頭語)로 치부 하고 있지만 실은 「자 눕는다」는 뜻의 우리 옛말 「자 뉘울」이 「사네루」가 돼 있는것입니다.…주로 남녀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경우에 쓰입니다.』말수가 적은 나선생은 한.일 비교언어에 관한 한 요설(饒舌)에가까웠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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