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건설’ 대통령과 ‘경제’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1년전 이맘때쯤 이명박 대통령은 목도 좀 붓고, 몸이 피곤했어도 신이 났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처럼 유권자 이목을 돌릴 만한 대형 사건이 번갈아 터지면서 어려운 고비들을 무사히 넘겨온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달 후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확신하면서 경제대통령 꿈을 펼칠 희망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리고 1년쯤 후에는 한반도 대운하 설계가 마무리되어 단풍이 들기 시작한 남한강 어디쯤에서 멋진 기공식을 머릿속에 그려 보았을 것이다. 물론 1년 후에 한국 경제가 이렇게 추락하리라고 상상조차 못하면서….

그런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일갈한 적이 있었다. “노 대통령 눈에는 멀쩡한 경제일지 모르지만 국민 눈에는 숨 넘어가기 일보 직전의 경제다”라고 하면서 “무능의 주역들끼리 모여 앉아 (지금 경제가) 박정희 정부 이후 최고라며 자화자찬 한다”며 “국민의 고단한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실정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며 작심하고 비판했다. 이 비판이 있었던 2007년 6월 당시 주가는 1800선이고, 환율은 930원대였는데 지금 주가는 1200선으로 떨어지고, 환율은 1400원대까지 치솟았다. 경제대통령이라고 자임하고 나선 분으로선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다.

물론 경제가 이렇게 추락한 게 정부 잘못만은 아니다. 오히려 시장 실패가 이번 경제위기의 주범이다. 환율 급증만 해도 달러 수요와 공급을 시장에서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비롯된 금융위기도 부동산시장을 잘못 예측한 탓이다. 그렇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그 위기를 국내적으로 크게 키운 현 정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주가가 이렇게까지 폭락하고, 환율이 이런 식으로 급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시장만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정부 개입도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 시장에서 약발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한마디로 정부 정책이 시장에서 신뢰를 받지 못해서다. 국민은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기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신도시니, 성장동력이니, 100대 과제니 하는 것들을 늘어놓고 있으니 이는 당장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몇 달 후에 푸짐한 한정식을 차려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게다가 폭등한 환율과 폭락한 주가로 인해 넋이 빠진 경제 주체들을 달래고 아울러서 정신이 들게 해야 하는데 ‘못된’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는 식으로 시장에 맞서려고 드니 안타깝다.

예를 들어 환율이 급등하는 것이 투기세력 탓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수가 얼마나 되고, 그 액수는 얼마나 될까? 기업이나 개인들이 달러를 재어둔다고 이를 꼭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갖다 팔면 오른 환율로 인해 당장에 이득이 생기는데 그럼에도 달러를 재어두는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 아닌가. 게다가 환율이 오른다고 두어 번 달러를 시장에 풀면 당장에 효과는 나타나겠지만 그것은 언 발에 오줌 싸기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건설대통령은 무언가 보이고 싶고,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도 그런 심리의 발로이고, 747 공약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야만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이 생기기에 건설대통령으로서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런 자세로는 경제를 잘 꾸려갈 수 없다. 자칫 시장에 맞서는 모습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경제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경제 주체들의 심리를 잘 읽으면서 이들을 다독거려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야당에도 협력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그래야만 크게 요동쳤던 시장이 조용히 가라앉을 수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외환위기가 발생했는데, 외환위기 발생부터 임기 말까지가 그의 가장 뛰어난 통치기간이었다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모든 것을 양보해서라도 당선자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기에 외환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꼬장’을 부렸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 닥쳤을 것이다. 그 후 김대중 정부는 ‘IMF를 초래한 사람은 김영삼, IMF를 극복한 사람은 김대중’이라고 떠벌렸으니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그래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처신은 역사가 평가할 만하다. 이런 겸허한 자세가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김정탁 성균관대 교수·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