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와인의 기쁨 <83>백포도주, 역시 신맛이 최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83호 30면

최근 신맛 백포도주의 범주에 들면서 달콤한 뒷맛을 남기는 풀보디 와인이 많이 선보이고 있다.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유럽과 미국의 와인 평가지에서 짙은 색깔에 향기가 진하고 힘찬 풀보디 와인이 고득점을 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 둘째는 지구온난화로 포도가 잘 익어 당도가 높아진 점이다.

잘 익어서 당도가 높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 때, 예년과 같은 도수에서 알코올 발효를 정지시키면 잔여 당분 때문에 뒷맛이 달콤한 와인이 된다. 요즘은 기온이 냉랭한 산지에서도 포도 자체의 당분이 많아 알코올 도수가 14, 15도 정도 되는 백포도주라고 하기 어려운 백포도주가 생산된다.

하나의 와인에는 다양한 맛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당분을 극도로 많이 남기는 와인은 단맛이 다른 맛을 모두 덮어버려서 ‘기분 좋은 단맛 와인’이라는 인상밖에 남지 않는다. 또 함께 먹는 요리가 섬세할수록 와인의 단맛이 요리의 맛을 망치기 쉽다. 역시 식사를 제대로 즐기려면 신맛 와인이 제격이다.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은 소믈리에 자격증 시험에 반드시 출제되는 산지로, 이곳의 와인은 대부분 단일 품종으로 만들기 때문에 초보자가 접근하기 쉽다. 특히 1990년대부터는 알자스 와인 중에 유명 와인 평가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생산자가 많아졌다. 이들 와인은 감칠맛이 뛰어나고 풀보디에 알코올 도수가 높아서 처음 마셨을 때는 솔직히 근사한 맛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개성이 너무 강해 한 잔 이상의 감동은 어렵다.

위베르 트림바크(오른쪽)와 함께.

그렇다면 본연의 알자스 와인이란 어떤 것일까? 지난 8월, 알자스 신맛 와인의 대명사 트림바크(Trimbach)의 사장 위베르 트림바크가 일본을 방문했다. 트림바크는 1626년에 창립, 무려 12세대에 걸쳐 와인을 만들고 있는 알자스 최고의 와인 명가다. 위베르가 말하는 와인 스타일은 실로 명쾌했다.

첫째, 와인은 신맛이어야 한다. 그래야 와인의 복잡한 맛을 제대로 인식하고 나아가 음식의 맛을 방해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와인은 순수해야 한다. 진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유산을 첨가해 유산발효를 시키면 와인에 감칠맛이 생긴다. 위베르는 이것이 포도의 개성을 없애는 원흉이라고 말한다. 트림바크는 통상적인 알코올 발효과정을 거친 뒤 셀러에 와인을 뉘어 놓고 정성껏 침전물을 제거한다. 셋째, 마시기 적당한 때에 도달한 와인을 제공해야 한다. 새로운 와인에는 어딘가 밸런스가 부족하고 조잡한 면이 있다. 위베르의 와인들은 셀러에 2년 정도 두었다가 시장에 내놓는다.

트림바크는 주력상품도 훌륭하지만 베이스라인도 흠잡을 데 없이 근사하다. 필자는 특히 베이스라인의 ‘리슬링 2006년산’을 좋아한다. 과일 맛으로 승부하는 와인이기 때문이다.

리슬링 2006년산은 겨울날의 호수처럼 맑고 냉랭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향기는 리슬링 특유의 바나나, 파인애플, 감귤류, 그린애플과 함께 석유 같은 광물 뉘앙스가 풍긴다. 입에 머금으면 신선한 과일 맛이 찾아 들고 단맛이라곤 전혀 남지 않는다. 유기산 특유의 새콤함이 있을 뿐. 그래서 리슬링 2006년산을 마시고 나면 첫 키스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