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희칼럼>해태.쌍방울 돌풍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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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스포츠 속설중에 『명선수가 반드시 명감독일 수는 없다』는 말은 오랫동안의 체험과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말하는 「선수」나 「감독」의 개념은 스포츠 아닌 다른 분야에도 해당된다는 의미에서 보편성을 지닌다.
유명한 투수경력에다 홈런왕으로 일세를 풍미한 베이브 루스의 소원은 명감독이 되는 것이었다.그러나 그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1929년 뉴욕 양키스 구단은 허긴스감독의 사망으로 그 후임감독을 물색중이었다.팀의 간판타자인 루스는 『나는 투수였기 때문에 젊은 투수들을 잘 다스릴 수 있고 타격이 전문이라서 타자들 다루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며 구단주인 래퍼 드에게 자천의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구단주는『자네는 자신을 제어하기도 어려워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면서 어떻게 딴 사람들을 돌본단 말인가』라며 이를 묵살했다.양키스타디움을 루스의 힘으로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팀에 대한 지대한 공헌과 발군의 기량에도 불 구하고 그의야구감독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96년 시즌을 열면서 야구전문가들의 페넌트레이스 전망은 대단히 신중하고 또 돌출변수가 없다는 상식선에서 의견들이 모아졌다.스포츠의 감칠맛은 의외성에 있다 하겠는데 선동열.김성한등 팀의 대들보가 빠져나간 해태와 만년 하위의 쌍방울이 예상을 뒤엎고 보란듯 선두를 질주함으로써 이른바 전문가들의 진단이 무색해졌다. 비록 이종범이 제대해 복귀했지만 투타에 공동현상이 생긴해태와 10승 투수가 한명도 없는 만년 하위팀 쌍방울에 한국시리즈진출의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었으리라.이렇게 볼때 전문가들의 오진은 이해할만 하다.
해태와 쌍방울이 페넌트레이스 상위를 차지한데는 나름대로의 동기가 있었다.「주전이 빠졌다고 해서 팀이 허물어진다면 남아있는우리들은 무엇인가」라는 심각한 자기성찰이 팀분위기를 일신했으며성적이 나빠 팀매각설이 떠도는 가운데 이 불명 예를 씻자고 나선 오기의 발동이 무서운 힘의 결집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의 구심점이 감독의 역량과 역할에서 비롯된 것은물론이다.우리는 흔히 관리야구와 자율야구의 장단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자율야구가 발을 붙일 토양을 마련하지 않는한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로야구가 설 땅은 없다.해 태와 쌍방울의 성공은 선수들이 그들의 체면과 인생을 건 한판의 도전에서 살아남은 정신의 승리였으며 감독이 그러한 분위기를 유도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이것이 자율야구의 모습이다.
루스를 감독으로 임명하지 않은 뉴욕 양키스 구단주의 형안이 돋보이는 것도 엘리트 선수가 지니는 아집과 독선이 결코 팀에 이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뛰어난 선수,화려한 경력의 소유자가 감독으로픽업됐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선수들로 하여금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의욕을 심어주고 격려하는 감독의 넓은포용력이야말로 우리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상 과도 맥을 같이한다.프로야구 해태.쌍방울의 성공사례는 그런 의미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KOC위원.전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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