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총리 統獨 밀사다룬 회고록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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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KGB와 슈타지등 옛소련과 동독의 정보기관이 독일 통일을 방해하려는 공작을 벌였다.』『고르바초프 옛소련 서기장이 독일에군대를 파견했다면 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헬무트 콜(66) 독일총리는 1일 회고록 『나는 독일의 통일을 원했다(사진)』를 출간,90년 10월3일 이뤄진 독일 통일과정 이면의 비사(비史)를 소상하게 회고하고 있다.
4백88쪽 분량의 회고록에 따르면 독일 통일의 전기는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약 5개월전인 89년 6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독의 수도 본을 방문했을 때 마련됐다.콜총리와 고르바초프는 이때 라인강변을 산책 하며 유럽의 장래문제와 독일 통일문제를 처음 거론했다.두사람은 이 자리에서통일은 휴머니즘에 입각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뒤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통일 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베를린장벽 붕괴 다음날인 11월10일 고르바초프는 콜총리에게긴급전화를 걸어 당시 독일의 상황에 대해 물었다.
『베를린의 상황이 통제가 불가능할 만큼 심각한가.시위대가 동독에 주둔중이던 소련의 군사시설을 공격하고 있다는게 사실인가.
』 당시 쇠네베르크 시청사로 몰려든 좌익 시위대에 둘러싸여 있던 콜총리는 측근을 시켜 고르바초프에게 베를린의 상황이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는 그 말을 믿었고 결국 소련은 독일에 군사 개입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콜총리는 당시 KGB와 슈타시가 고르바초프에게 『동독에 있는소련군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보고,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발해 독일 통일을 저지하려 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회고했다.
만일 고르바초프가 콜총리를 믿지 않고 독일에 탱크를 파견했다면 독일 통일은 좌절됐을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콜총리는 『지금까지도 나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주위의 선동가들에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나를 믿어준 사실에 감사한다』고 밝히고 있다.
콜총리는 이와함께 과다한 통일비용 문제로 동서독의 급격한 통합을 반대했던 서독 내부의 반대자들과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쓰고 있다.
당시 서독의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와 카를 오토 총재는 동서독 경제통합으로 인한 부담을 우려해 점진적인 통합을 주장하며 콜총리에게 반기(反旗)를 들었다.
반대자들은 짧은 기간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경제가 통일을 이루기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특히 서독 마르크화와 동독 마르크화를 1대1로 교환키로 한 콜의 결정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콜총리는 마르크화의 등가 교환은 오랫동안 갈라졌던 동서독의 일치와 유대.평등을 보여주는 정치적.심리적 효과를 거두는데 성공했으며 이에따라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독일 통일 비용으로 지난 6년동안 7천2백억마르크(약 3백94조원)를 썼다.그러나 통일 당시 이렇게 많은 비용이 들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통일을 계속 추진했을 것이다.』 콜총리는 통일을 지연시킴으로써 부담해야할 정치.경제적 비용이 자신의 방식대로 단시일내에 통일을 이루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콜총리의 회고록은 지난 여름 휴가도중 카이 디에크만과 랄프 게오르그 로이트라는 두 언론인에게 구술해 씌어져 콜총리 취임 14주년과 독일 통일 6주년을 기념해 출간됐다.콜총리는 오는 31일이면 취임 14년1개월로 독일 최장수 총리가 된다.
베를린=한경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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