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韓人들>2.일상생활속의 애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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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기(雨期)속에 빗줄기가 멈춘 8월말 필리핀 마닐라 중심지의한 주택가에 픽업트럭이 나타났다.이민온지 10년된 야채상 현종걸(玄鍾傑.40)씨의 「이동 슈퍼」다.마늘.알타리 무.식용유등을 가득 실은 그의 트럭 주변엔 한인 주부들이 금세 몰려든다.
4년전 자동차 부품상을 하는 남편과 이곳에 이주해 온 송순일(宋順一.40)씨는 『비가 와 야채값이 좀 올랐지만 열무.고추등 없는게 없어 좋다』고 말한다.
한보건설에 다니는 남편을 따라 2년전 마닐라에 온 백인숙(白仁淑.36)씨는 야채를 고르며 한국소식등을 주고 받는 이 시간이 가장 즐겁다는 표정이다.
玄씨는 오전4시에 일어나 야채트럭을 몰고 식당과 주택가를 도는 힘든 일을 교회에 가는 토요일만 빼고는 매일 한다.이주 초기에 시작한 포도농사를 태풍에 망쳐 한국(안성)에서 농장을 팔아 가져온 3천만원을 몽땅 날리기도 했던 그는 이 런 고생 끝에 지금은 픽업트럭 3대와 꽤 큰 야채상점을 갖게 됐다.큰 딸은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에 보낸다.
아시아의 한인 중에는 玄씨와 같이 밑바닥을 훑으며 자리잡은 경우가 많긴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꽤 있다.인도 델리 시내 아시아개발은행(ADB)인도사무소 수석주재관인 정종섭(鄭宗燮.54)박사도 그중 하나.그는 17년간 필 리핀 ADB본부에 있다가 지난해말 인도로 부임했다.鄭씨 부부는 요즘 부쩍적적함을 느낀다.하버드.예일.조지타운등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재학중인 세 자식이 모두 「둥지」를 떠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기업 경영자로 활발히 뛰고 있는 대학 동창들 소식을접할 때면 『나도 그길을 갔으면 지금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는 鄭씨는 ADB근무 18년 동안 아시아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보람과 자부심으로 허전함을 떨쳐버린다.
태국 방콕 중심가 스쿰빗 12번가에는 「코리아 타운」이 있다.차이나타운이나 아랍인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한식당.
보석상.미용실등 한인업소 25개가 몰려있어 그렇게들 부른다.지구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한식당은 교민이나 주 재원.관광객이 어울리는 사랑방이다.식당에 뿌려지는 소식지의 각종 광고도 「서울 압구정동 헤어디자이너를 초빙한 미용실」과 「오징어 젓갈.장아찌반찬의 도시락,김밥 주문」「A고동문회 소식」등 지극히 한국적인 것 일색이다.
잘 나가던 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이민길에 오른 경우도 있다.朴모씨는 콘크리트파일 제조설비 업체를 경영하며 6공시절 5백만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그러던중 공사 하나가 잘못되면서 자금줄이 막혀 94년말 도산했다.이후 그는 가족은 모두서울에 두고 일거리를 찾아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를 떠도는 신세가 됐다.
살다 보면 이런 저런 문제로 현지인들과 부닥칠 때도 있다.부동산을 사고 팔 때나 교통사고가 난 경우등이다.이런 땐 언어와관습탓으로 인해 고충을 겪기도 한다.
베트남 호치민시에서 한식당을 하는 차문기(車文基.49)씨는 『외국인들은 자신의 명의로는 오토바이 한대도 살 수 없다.그래서 현지인의 이름을 빌려 차나 집을 사는데 나중에 애를 먹는 경우를 가끔 본다』고 말한다.현지인들이 이름 빌려 준 값을 내라며 떼를 쓰는 일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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