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진짜 맹세'가 나와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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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이젠 놀라고 충격받고 불안해하는 일에도 지쳤다.언제까지 우리는 충격과 불안속에서 살아야 하는가.그런 일이 한두번이어야지 이렇듯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너지고 가장 믿었던 것이 배반당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서야 어떻게 사람다운 삶을 살 아갈 수 있는가. 이번 무장공비사건이 일단락되면 또 수많은 맹세.다짐.약속이 쏟아질 것이다.해안방어태세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동해안감시체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안보태세를 가일층 강화하겠다…등등의 약속과 맹세가 홍수처럼 나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그 약속과 맹세를 믿을 수 있을까.그동안에도 약속과 맹세는 수없이 있었다.성수대교가 무너진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안전의 맹세가 있었지만 그 맹세의 메아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삼풍백화점붕괴 참사를 겪 었다.아현동가스참사를 겪은 후에도 가스안전의 맹세는 요란했지만 다시 대구가스참사가 터졌다.맹세는 많았어도 그 맹세가 지켜진다는 아무런확신도 가질 수 없었다.
무장공비를 다 잡고나면 물론 다시 맹세를 하긴 해야한다.어떻게 해서 북한잠수함이 우리 앞바다를 제집 드나들듯 할 수 있었는지 원인과 실태를 뼈 아프도록 철저히 점검하고 다시는 그런 허점이 없도록 철저한 보완.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항상 철통같은 방어태세를 장담하며 국민더러 안심하라고 하던 군이 왜 코앞까지 잠수함이 온것도 모르고 늑장보고.늑장출동의 구멍을 냈는지 철저히 따져보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맹세는 전처럼 맹세로 끝나는 맹세가 돼서는 안된다.반드시 지켜야 할 맹세가 돼야 하고 지키는 것이 확인되는맹세라야 한다.
생각해 보라.북한잠수함은 사흘동안 강릉앞바다를 휘젓고 다니며세번이나 육지에 침투했다.해상처장이란 자는 이번이 세번째 온 것이라고 한다.천우신조(天佑神助)로 좌초해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던들 끝내 모를 뻔 했다.지난해에도 다녀가고 그전에는 제주도까지 간첩을 태워보냈다던가.
이게 군이 있고 안보가 있는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누구 말처럼 기막히다 못해 미치고 폴짝 뛸 일이 아닌가.저들이마음만 먹으면 잠수함을 타고와 강릉시장에서 광어 횟거리 장을 보고 돌아갈 판이라는 독설(毒說)까지 나오는 실 정이다.
이런 상황을 누가 만들었는가.이런 상황을 누가 방치했는가.군상층부나 내각.청와대는 상황이 어떤지,방어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체크하고 확인하는 노력이라도 했는가.평소 아무 것도 안하다가 「이상 무(無)」하는 밑의 보고만 믿고 태평으로 있진 않았는가.이 모든 상황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줄줄이 사표내고 인책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북한잠수함을 국민교육용으로 전시한다는 말이 나왔지만 정말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국민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빈정거림이 나오고 있음을 당국자들은 알아야 한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기 전에도 대통령은 서울시장에게 세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한다.철저한 안전점검을 하라는 대통령의 세번 지시에 그때마다 서울시장은 『염려마십시오.이상없습니다』라고 했다는것이다.현장에서 이행되는지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지시는 소용없는 것이다.결국 성수대교는 무너졌다.
이번에도 대통령은 새벽보고를 받고 빈틈없는 대처를 지시했다고한다.아마 벌써 빈틈없이 대처하고 있습니다 하는 보고가 여러번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나 성수대교때처럼 지시만으로는 안된다.정말 현장에서 빈틈없는 대책이 마련.실천되고 있는지 점검.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항간에서 김영삼(金泳三)정부의 최대 약점의 하나가 현장을 모르고 뒷심이 부족한 것이라고 한다.처음에 거창한 구호를 내걸고지시를 내려 보내지만 현장에서 유야무야되고 뒤를 못 챙긴채 밑의 적당보고로 그냥 넘어가곤 한다는 것이다.
이번 무장공비사건의 뒤처리에서 그런 약점이 또 되풀이돼선 안된다.이번에야 말로 대통령은 대통령대로,군은 군대로 방어태세 만전을 맹세하고 부단한 현장의 점검.확인으로 맹세의 실천을 확인해 나가야 한다.
이제 국민에게 더이상 거창한 말을 할 필요도 없다.21세기 선진국이니, G7진입이니 하는 장미빛 공약을 믿지않게 된 것도이미 오래 된다.더도 말고 공비가 이 땅에 발을 못 붙이게 하고 겁내지 않고 다리를 건너게만 해주면 된다.이 번에는 맹세를하되 「진짜 맹세」를 해야 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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