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움직인 여인’ 도이 정계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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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최초의 여성 정당 대표와 유일한 여성 중의원 의장이었던 도이 다카코(79·사진) 일본 사민당 명예당수가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

도이는 6일 “중의원 선거에 입후보하겠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하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사민당 당수도 이날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유세하던 중 “비례대표로 나오는 것보다 명예 당수로 긴키(近畿) 지역을 중심으로 선거 지원유세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도이는 “의원이 아니라고 정치활동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지만 일 언론들은 사실상 정계 은퇴로 해석하고 있다.

‘산(자민당)을 움직인 여성’ ‘사회당 재건의 마돈나’ 등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는 도이는 일본 여성파워의 상징이자 진보세력의 리더로 일 정치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자위대 해외 파견 금지 등 평화헌법을 옹호하고, 정계 인사들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등 우익으로 기우는 일본 정계의 흐름을 경고해 왔다.

1969년 효고 2구 중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 11선을 기록하면서 ‘사회당의 간판’으로 살아온 그의 정치역정은 그 자체가 전후 일본 진보세력이 걸어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86년 사민당의 전신인 사회당 중앙집행위원장에 취임해 일본 헌정 사상 첫 여성 당 대표가 됐다. 89년에는 여소야대 참의원의 첫 여성 총리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고, 93년에는 최초의 여성 중의원 의장이 됐다. 그가 당수를 맡은 사회당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회당이 89년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과반수 획득을 저지한 것이다. 이듬해 중의원 선거에서는 의석수를 두 배 가까운 136석으로 늘렸다. 이때 도이는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말을 남겼다. ‘산’은 55년 이후 장기 집권해온 자민당을 뜻했다.

89년 총선 때는 그가 지원한 여성 정치인들이 대거 의회에 진출한 이른바 ‘마돈나 돌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자민당과의 연정에 따른 정체성 상실은 사회당의 입지를 급격히 약화시켰다. ‘물과 기름’이라고 여겨졌던 자민당·사회당 연립정권은 2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 후 사회당은 새로운 비전을 심어 주지 못해 소수당으로 전락해 갔다.

2005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비례대표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이듬해 사민당 명예 당수를 맡았으나 고령 등으로 정치 일선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강연 등의 활동을 해왔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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