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 시시각각

금융위기에서 살아남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세계 금융의 총본산인 미국 뉴욕의 월스트리트를 진앙지로 발생한 미증유의 지진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쓰나미처럼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을 휩쓸고 있다. 나라마다 쓰러지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구제금융은 물론 무제한 예금지급 보증 같은 극약 처방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의 금융위기로부터 비교적 안전할 것 같았던 국내 금융시장에도 위기의 쓰나미가 사정없이 밀어닥쳤다. 환율과 금리는 다락같이 오르고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지기만 한다. 11년 전 외환위기 같은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정부 당국자의 목소리는 시장의 광기 어린 아우성에 묻혀버렸다. 도대체 치솟는 환율의 끝이 어디고, 추락하는 증시의 바닥은 어디란 말인가. 그 잘난 경제분석가들과 투자자문가들은 다 어디 갔는지 시장은 온통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혼돈에 빠져들고 있다.

 아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누구도 이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한다. 나도 나를 믿지 못하겠거늘 하물며 남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모두가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지만 사방이 캄캄하다. 어디가 살 길이고 어디가 죽을 길인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자니 더 큰 불안감이 엄습한다.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이 종말론적 혼돈의 시기를 과연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이즈음에서 미국의 전설적인 투자가이자 ‘시장의 광기’를 오래 천착했던 로버트 멘셀의 조언이 도움이 될 듯하다. 그는 자신의 책 『시장의 유혹, 광기의 덫』에서 혼돈의 시기에는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격랑의 시기에도 살아남은 그의 투자법칙은 보다 실전적인 생존지침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시장은 항상 탐욕과 두려움이 시계추처럼 오가는 곳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탐욕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면 돈 벌 기회가 사라지고, 두려움이 정점에 오르면 오히려 새로운 투자의 기회가 널려 있다.

-시장은 제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으로 주저앉더라도 늘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두려움은 언젠가 가라앉고 내재된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에 집중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수하라. 자신이 잘 모르면서 남들이 한다고 따라 하거나, 자신의 성격에 어긋나는 투자를 하면 항상 오판과 후회가 뒤따른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라. 내일 당장 죽게 된다면 과연 지금의 투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지 따져보라. 투자대상은 세대를 넘어서 이전할 만한 가치를 지녀야 한다.

사실 이런 식의 투자법칙은 너무나 상식적이어서 다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혼돈과 위기의 순간에 이를 실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당장 내일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을 이기고 대중이 휩쓸려 가는 격류를 홀로 거슬러 올라가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러나 군중심리에 휩쓸려 공도동망(共倒同亡)의 길을 가기보다는 어렵더라도 자신의 원칙을 꿋꿋하게 지키는 편이 살아남을 확률이 크다.

 이제 멘셀의 지침에 따라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금융위기의 실상을 복기해 보자. 미국의 금융위기는 탐욕이 극단으로 치달은 끝에 부풀 대로 부푼 거품이 꺼진 데서 비롯됐다. 그 와중에 두려움이 전염병처럼 번지면서 전 세계의 금융시장이 추락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거품이 걷히고 두려움이 가라앉으면 내재된 가치가 드러날 것이다. 거기엔 새로운 투자 기회가 널려 있을 것이다. 세상은 이번 금융위기로 망하지 않는다. 그때까지 참고 견딜 수 있다면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다만 시장이 두려움과 광기에 더 많이 휘둘릴수록 거품의 상처는 크고 회복의 기간은 길어질 것이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낳고, 시장의 광기는 스스로 증폭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미 투자자든 정책 당국자든, 아니면 평범한 시민이든 참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다. 그러나 여기서 냉정을 잃으면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