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長壽大國'일본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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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본 후생성은 지난 10일 일본의 1백세 이상 장수(長壽)노인이 모두 7천3백73명으로 사상 처음 7천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인간의 꿈이라 할 수 있는 1백세 수명을 실현한 인구가 63년의 1백53명에서 33년만에 무려 50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郎)총리는 올해로 1백세를 맞은 1896년생 3천9백여명에게는 따로 축하편지와 은으로 만든 술잔을선물할 예정이다.
그러나 축하무드의 뒤켠에서는 「장수대국」의 어두운 그림자도 점점 짙어지고 있다.
지난주말 도쿄(東京)도 구니타치(國立)시의 초현대식 노인전용아파트에서 숨진채 발견된 76세의 할머니가 한 예다.
노인들이 혼자 또는 부부 단둘이서만 살고있는 이 아파트는 화장실앞 천장에 고감도 센서가 설치돼 있어 12시간이상 사람의 활동이 감지되지 않을 때는 자동적으로 경비실에 알려주는 첨단시설을 갖추고 있다.
혼자 살고있던 할머니는 약 1주일전 숨진 것으로 추정됐으나 경비실의 벨은 울리지 않았다.자동센서가 바람에 날리는 커튼을 사람의 움직임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외롭게 숨을 거둔 노인과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다소 으스스한 이런 광경은 요즘 일본에서 유행어로 등장한 「고독사(孤獨死)」의 전형적인 모습이다.그나마 첨단시설이 없는 일반 아파트에서는 사후 몇달뒤에야 시신이 발견되는 일도 흔하다. 후생성이 장수통계를 발표하던 이날 도쿄 도청은 「노인성 치매 환자를 보살피는 사람중 40%가 65세이상의 노인」이라는 우울한 조사결과를 내놓았다.
「노인대국」에 발목잡힌 경제대국 일본의 신음소리는 우리에게도먼 훗날의 일은 아닐 것이다.
노재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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