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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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여자 나이 마흔.
그새 충분히 「여자」일 수 있었다 하겠고 이제부터 농익을 무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갓 마흔.참 좋은 때지.』 고교수는 언젠가 농담처럼 말했다.어째서 「좋은 때」인지는 묻지 않았다.
어떻든 인생도 알만큼 안 나이에 자기의 뜻과 능력을 펼 일거리를 갖게 된 것이 고마웠다.
그런데 이따금 허망한 구름이 가슴을 스쳐지나곤 하는 까닭을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대체 이 허망함은 어디서 오는 무엇인가.
그것이 빈 밤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 때 을희는자신에게 화내지 않을 수 없었다.이혼하기 전 남편은 이태동안이나 을희를 안지 않았다.그러나 결코 허망함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욕망에 시달려본 적도 없었는데….
홀로 된 다음 맞는 밤은 홀가분하면서도 왠지 한구석이 마냥 빈 듯했다.먼 동굴 속에서 뜻을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울려오는것도 같았다.
-오우 보옴! 영국 작가 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에 나오는 수수께끼의 동굴서 울려오는 듯한 소리.작은 뱀떼로 이루어진 한마리의 거대한 구렁이를 연상케 한다는 울림소리,「오우 보옴」.
때로는 우렁우렁 들려오는 동굴소리가 을희의 밤을 허전하고 스산하게 만드는 것이다.
포스터에 의하면 인도의 그 동굴은 거울처럼 반들반들하다.누군가가 굴 속에서 진실한 사랑에 대해 얘기했을 경우에도 그 말은섬뜩한 울림소리가 되어 번져 결국 「오우 보옴」이라는 뜻모를 비웃음을 닮은 중얼거림으로 끝나고 만다 한다.
포스터가 그 동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잘 알 수없다. 그러나 작가의 메시지와는 관계없이 「오우 보옴」이란 동굴의 울림소리는 과녁을 꿰뚫는 화살처럼 밤의 공간에 꽂히곤 했다. 소서노여대왕의 둘째 남편 동명성왕의 이름은 추모(鄒牟).
주몽(朱蒙) 또는 중모(仲牟)라는 한자로 이두(吏讀)표 기되기도 했다.『삼국사기』는 「주몽」이란 부여(扶餘)말로 「선사자(善射者)」,즉 「활을 잘 쏘는 자」를 가리킨다 했다.
이 백발백중의 명궁(名弓)은 재력과 권력을 지닌 연상의 과부소서노의 동굴까지 꿰뚫었다.그는 활쏘기.말타기등 행동적 기량이나 지략(智略)을 두루 갖추고 있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소서노를 사로잡았을성 싶지 않다.지극한 정성이 그녀를 감동시켰을 것이다. 을희는 정성의 불덩어리와 같은 구실장을 착잡한 마음으로쳐다봤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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