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장새풍속>2.관심 모으는 서양미술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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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회화작품을 좋아해요.하지만 외국작품은 고가일 것이라는 생각에 구입할 엄두를 못 냈지요.그런데 최근 외국작가 전시에선 큰부담없이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고를 수도 있어 자주 전시장을 찾지요.』 2~3년전부터 국내 소장작가 작품을 한두점씩 구입해온 K(43.출판업)씨는 지난 5월 프랑스 작가 기라망의 10호짜리(53×45.5㎝) 유화를 국제시세를 밑도는 1천4백만원에 구입한 후부터 외국작품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국내작가의 경우 초대전보다는 대관전에 더 관심이 많지요.초대전 해서 전시경비 빠지면 성공이라고 자위하는게 화랑가의 현실입니다.』 인사동의 중견 화랑인 P(47)씨의 말이다.한국 미술시장의 명암을 느끼게 하는 양면의 얘기다.한국작가의 작품 판매가 부진한데 비해 외국작가 작품이 국제시세 가격으로 국내에서수요층을 넓히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는 추세임을 보여준 다.
94년 5천4백89건의 각종 미술전시회로 전시풍년을 구가했던국내 미술계는 지난해 3천4백47건으로 급격한 감소세를 보였다.반면 지난해 외국작가의 한국전은 단체.개인전을 포함,모두 2백66건으로 94년에 비해 거의 두배에 달했다.
국내작가들의 전시가 크게 위축된 반면 외국작가의 한국전은 러시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히 미술 애호가들의 호응도 높고 구매층도 두터워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국내외 작가 각 30여명이 군집(群集)개인전 형식으로 예술의전당에서 연 「마니프 96전」에선 국내작가 작품은 92점,외국작가 작품은 1백55점이 각각 팔려나가기도 했다.국내에 처음 소개된 미국의 잭 매클린의 평면과 입체 작품은 작품당 50만~1백20만원으로 30점이 모두 소화됐고 최고 4천8백만원에서 소품은 5백만~8백만원까지 거래된 프랭크 스텔라의 평면작품도 9점이 모두 개인 소장가의 수중에 들어갔다.
마니프 운영자인 김영석(41)씨는 『올해 마니프 판매 동향은외국작가의 지명도와 상관없이 1백만~4백만원의 반구상작품이 국내작품보다 인기였다』며 『가격이 국제시세 수준이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외국작가 작품의 국내판매가는 국내유입에 국제딜러나 외국 화랑이 중간에 개입하는 일이 많아 국제시세보다 비싼 경우가적지 않았으나 직거래등으로 국제시세화하면서 판매도 늘어나는 추세라는 얘기다.
여기에 일반 미술애호가 중심으로 외국작품 구매층이 확산되는 배경엔 지명도가 낮은 소장작가 작품은 질이나 가격면에서 국내작가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국내작가 작품보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데다 국제시세로 국내가 보다 싼 점이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화랑 큐레이터 박경미씨는 『지난봄 30,40대 국내외 작가 3명의 「표면과 이면사이전」에서 두 외국작가의 출품작중 70%가 판매됐는데 모두 일반인이 구입했다』며『외국작가를 소개하는 단계는 지났으며 장기적으로 시장을 다져간다는 관점에서 중견.소장 외국작가의 신선한 작품전으로 확산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현재 장 샤를 블레전,메시지-호주미술전,세자르 회고전등 외국작가들의 한국전이 러시를 이루고 또 프랑스의 드니즈 르네.다니엘 르롱,영국의 이안 바카등 세계적 화랑경영자들과 딜러들이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며 한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내년 미술시장 개방을 앞두고 시장 공략 차원에서도 국제시세보다 다소 낮은 가격으로 진출을 시도할 것이란 점을 감안하면 외국작품의 한국 유입은 계속되고 작품 판매도 늘어날 전망이다.
김용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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