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사람은 1만3407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1.5명(200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OECD 평균인 11.2명과 비교할 때 두 배 가까운 수치다. 1995년부터 ‘자살예방 긴급전화(Hot-Line)’인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봉사해 온 오승근 명지전문대(청소년교육복지) 교수는 “자살에 대한 오해가 상식처럼 퍼져 있다. 자살 예방 교육의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씨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인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오 교수는 “죽고 싶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핫라인으로 전화를 거는 대부분의 사람이 ‘죽고 싶어요’라는 말로 얘기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죽음을 암시하는 신호’는 복합적이다. <그림 참조>그림>
‘죽겠다’는 표현뿐 아니라 자기 능력에 대한 회의감도 드러난다. 음주량이 늘고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따라서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기간이 늘어난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위험도가 낮은 ‘간접적 징후’다.
오 교수는 “오랫동안 상담을 하면서 자살 의지를 굳힌 사람일수록 더 직접적 표현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의 경우도 그렇다. “납골당이 아니라 산에 뿌려 달라” “마지막 전화다”라는 말을 남겼다.
자살자는 아끼던 물건을 친구에게 주거나, 가족 걱정을 하기 시작한다. 최씨는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코디네이터에게 남겼다. 죽음을 암시하는 메모도 발견됐다. 화장실 등 폐쇄된 공간에 혼자 있는 것도 위험한 신호다. 불안정한 감정의 강도를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호응하며 대화하라=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가정폭력, 경제적 파산, 배우자의 외도 등 ‘위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오 교수는 “일단 모든 걸 쏟아놓게 하라”고 조언했다. ‘왜 죽고 싶은지’에 대한 이유를 꼬치꼬치 캐물으라는 것이다. 말을 할 때는 ‘아, 그렇구나’ ‘그래서?’ 등의 말을 통해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다. ‘상대가 궁금해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게 대화의 기본 자세다.
자살 위험을 감지한 주변 사람의 경우 전문가 등 제3의 조언자를 찾는 것도 효과적이다. 상담사나 전문의의 조언이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는 ‘제3자의 객관적 진단’이라는 것을 자살하려는 사람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불화가 이유일 경우 친지의 조언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임’과 연결시켜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 교수는 얼마 전 장애를 가진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귀면서 본국으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큰 상처를 받은 데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했던 장애 여성은 죽음을 택하려 했다. 오 교수는 비슷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여성에게 소개했다. 누굴 찾아가야 할지도 구체적으로 말해줬다. 장애 여성은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죽겠다”고 시작된 전화는 “털어놓고 나니 좀 낫다”는 말로 끝났다.
◆자살예방교육도 성교육처럼 제도화=최진실씨의 사망 이후 ‘모방 자살’이 나타나고 있다. 3일 0시30분쯤 전남 해남군의 한 아파트에서 주부 박모(55)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오전 6시쯤 강원도 강릉의 다세대 주택에 사는 이모(30)씨도 같은 방식으로 자살했다. 오 교수는 “유명인의 자살은 모방행위를 유발하며 간혹 죽음을 미화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으로 보면 유명인의 ‘자살 예방 캠페인’도 같은 높은 효과가 있으므로 그들이 많이 나서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또 ‘자살 교육의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청소년·군인·재소자나 유흥업소 종사자들은 자살 위험이 높은 유형이다. 그는 “지금까지 정부는 이들을 상대로 성교육 등을 통해 관리를 해 왔지만 자살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강인식·장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