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여왕의 탄생과 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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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TV CF에는 광고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벌어졌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이 단 한 줄의 카피는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최진실의 탄생을 알렸다. 현재 한국광고단체연합회(KFAA)에는 고 최진실의 생전 CF영상이 160개 이상 자리잡고 있다. 1989년 영상부터최근 광고까지, 이 영상들은 고인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경제 부흥기던 1990년대 삼성, LG를 비롯한 가전제품 회사들은 향상된 국민생활에 발맞춰 VTR, 청소기 등 생활에 편리함을 제공하는 가전제품 판매에 열을 올렸다. 특히 세탁기는 1990년대 가전제품 시장의 핵심이었다. 1993년 삼성전자는 당시 7천억의 세탁기 시장 점령을 위해 다시 한 번 고 최진실을 기용한다. 이때 고인은 “삼성전자 CF를 다시 맡게 되니 친정에 온 것 같다”며 출연료 거론도 없이 촬영에 들어가는 의리를 보여줬다.

그러나 CF 여왕에게 고된 시련이 다가왔다. 가구, 화장품, 음료수 등 9개 회사의 광고를 연달아 출연하며 CF 겹치기 출연과 고액의 개런티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설문조사에서 소비자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싫어하는 모델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1994년 드라마 '사랑의 향기'에서 동생 최진영의 친구인 영화배우 이병헌의 상대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 ‘최진실도 이제 나이를 먹었네’ ‘상대역 이병헌에 비해 누나같다’ 등의 뼈아픈 비난을 받았다. 시청자들에게 최진실은 언제까지나 귀엽고 상큼한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기에 겪은 시련이었다. 이어 1995년에는 기저귀 CF 출연계약을 맺었다가 유부녀 이미지를 우려, 출연을 거부해 서울지법 서부지원으로부터 계약파기에 따른 손해배상 판결을 받기도 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히로인 오드리 헵번은 귀여운 여인에서 만인의 여인으로 변신했다. 한편의 영화가 오드리 헵번의 원숙미를 관객들의 마음에 녹여낸 것이다. 오드리 헵번에게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터닝 포인트였다면 최진실에게 영화 '편지'는 그녀가 더 이상 CF스타가 아닌 배우라는 것을 각인시켰다. 서울관객만 72만을 동원한 영화 '편지'는 뇌종양으로 죽은 남편이 남긴 비디오 테잎을 보며 오열하는 최진실의 모습을 통해 그녀의 화려한 변신을 선언했다. 더불어 같은 해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역시 대성공을 거두며 최진실은 귀여움이라는 껍질을 벗어 던진다. 동시에 드라마에서 최진실이 사용한 무선전화기가 대히트를 치며, 최진실의 인기를 입증했다. 그녀는 이후, 한국 최초로 4000만엔의 톱스타 대우를 받으며 일본CF 진출에 성공한다.

1988년 무명배우로 시작해 90년대를 풍미하며 8년 이상의 시간을 CF여왕으로 등극했던 고(故) 최진실. 그녀는 만인의 여인으로 언제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때마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변신해왔다. 하지만 그녀는 2008년 10월 2일, 자신의 CF같은 인생을 스스로 마감했다.

강대석 기자, 주혜경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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