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켜온 그린벨트 왜 서둘러 풀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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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부가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2020년까지 서울 면적의 절반에 해당하는 그린벨트 308.5㎢를 풀기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린벨트를 해제해서라도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겠다”고 언급한 지 열흘 만에 주택 500만 채 공급 계획을 발표하고, 다시 열흘 만에 그린벨트 해제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 40년간 어렵사리 유지해온 그린벨트를 푸는 일을 이런 식으로 얼렁뚱땅 해치워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대통령이 그린벨트 해제를 언급했을 때부터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간곡히 당부했다. 그린벨트 해제는 택지나 산업용지 마련만이 아니라 장기적인 국토 이용의 효율성과 녹지 확보 전략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할 문제다. 당장 눈앞의 용지 확보 때문이라면 그린벨트를 진작에 풀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그러지 않은 데는 그린벨트 보전에 대한 더 큰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유로 2001년 논란 끝에 그린벨트를 풀기로 했을 때도 2020년까지의 해제 총량을 최소한으로 묶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직 해제 대상 총량이 남아 있는데도 서둘러 해제 면적을 세 배로 늘린 것은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더구나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에 수도권 주변의 그린벨트를 풀어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고, 그것도 층수 제한 없이 고밀도로 개발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해제 대상 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덜컥 해제 총량을 미리 발표한 것도 사려깊지 못한 처사다. 그렇지 않아도 불붙은 해제 대상 후보지의 땅값 급등세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이래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값싼 택지와 공장용지를 공급한다는 취지마저 무색해질 지경이다. 해제 요청을 하더라도 땅값이 오르면 해제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설명은 궁색하기 짝이 없다.

그린벨트가 이미 상당 부분 녹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해당 토지 소유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지켜온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이를 변변한 논의나 사회적 합의도 없이 섣부른 개발논리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