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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위석칼럼>태백시 '폐광진흥사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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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반 도로를 달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동해안을 정처 없이 혼자다녀 보기로 하고 나선 길이지만 뒤늦은 사흘동안의 여름휴가 한나절을 태백시에서 보내겠다는 계획은 서울을 떠날 때부터 가지고있었다.24일자 조간신문의 강원도 「폐광진흥사 업」기사가 폐광의 중심지인 태백시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켰던 것이다.
꽤나 가까운 곳까지 왔는데도 불구하고 태백시로 가는 시외버스는 좀체 없다.태백시를 왕래하는 승객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일 게다.순전히 탄광 때문에 생긴 이 도시는 45개나 되던 광산이3개밖에 안 남게 되자 완전히 「별 볼일 없게」 된 것이다.
동해안 관광지는 여름 한 철동안 해수욕장과 함께 꽤나 붐볐을것으로 보이는 즐비한 식당.여인숙.민박시설이 그 며칠 사이에 벌써 간판이 반쯤 떨어지거나 문이 달아나고 없는 데가 많이 눈에 뜨인다.물론 주인도 없이 비어 있다.우리나라 의 관광객 행태와 관광사업 현황이 서늘해진 바람을 타고 여름의 끝마무리인듯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너무도 잘 보인다.항산(恒産)도 항심(恒心)도 없기 때문에 「항객(恒客)」이 없는 것이 우리나라 서민관광이다.
사람은 나그네가 되고 싶어 하는 동물이다.나그네가 되어 낯선곳에 가서 그곳의 풍경과 음식과 인정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한다.신변에 붙어 다니는 일상의 소란을 떠난 관광지의 잠자리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고 싶어 한다.한 두어권심금을 울리는 명작을 읽으며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가 아무 생각 없는 사람이 되었다가 하는 즐거움을 가지고 싶어 한다.우리나라의 여관이나 콘도는 이런 그리움을 통째로 짓밟아버리고 만다.그래서 관광지에는 기껏해야 계절 밖엔 없다.계절이 끝나면 다음해까지 그 관광지도 끝난다.
원덕에서 태백시로 가는 길은 가곡천 급류를 따라 거꾸로 올라간다.비내리는 태백산맥을 해발 8백가 넘는 신리재에서 넘는 기쁨을 누리면서 나는 시외버스가 여관보다는 훨씬 더 좋은 방향으로 착실하게 발달한 관광시설이라는 점을 느꼈다.신 리재를 넘으니까 석탄캐기에 이어 등장한 신산업인 고랭지 채소 재배 현장이산꼭대기에 아름답게 나타난다.
나라나 고향을 일러 우리는 「(금수)강산」 또는 「(고향)산천」이라고 부른다.산과 강을 빼면 남는 것이 거의 없는 자기네나라를 발견한 우리 조상들의 지혜롭고 자연스런 작명이다.이 이름은 현대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다.자기 나라를 우리 왕국이니 우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나라 사람도 많다.우리 조상은 이런 이름을 붙일만큼 정치 과잉이 아니었고 지금의 우리들도 그렇지 않다.강산이나 산천은 누구에게나 종교이기도 하다.
태백시에 닿으니까 함백산의 석탄 폐광석들이 수백 아래로 시커멓게 뻗어 있는 것이 비와 구름 사이로 보인다.우산을 받고 걸어서 인구 6만명이 사는,이 폐광 도시의 한 가운데 있는 황지(黃池)연못을 가 보았다.북에 매봉산,남에 태백산 ,동에 연화산,서에 함백산 이렇게 네 산으로 둘러싸인 고원 분지인 이 곳은 태백시라는 새 이름이 생기기 전까지 황지라고 불려왔다.이 작은 못은 낙동강 1천3백리의 발원지다.태백시는 낙동강을 포함해 남한강과 오십천,이렇게 세강의 발원 지다.백두산 천지가 압록강.두만강.송화강 세강의 발원지이듯 이 분지도 그러하다.백두대간의 한 복판에 있는 태백산,여기에서 줄기를 뻗어 강과 산들이 출발한 것이 우리 강산의 절반이다.
이곳의 지기(地氣)는 수기(水氣)뿐만 아니라 화기(火氣)도 넘쳐 태백권은 우리나라 석탄 총생산량의 70%를 감당해 왔다.
이곳 석탄은 전국의 나무를 대신하는 땔감이 돼주었다.그래서 조선조 말엽에서 일제 수탈과 6.25 내전을 거치면 서 황폐를 극했던 전국의 삼림을 재생시키는 밑천 노릇을 해 주었다.우리는태백의 「검은 단물」을 빨아먹으며 오늘날의 경제를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바람에 태백은 비만 오면 검은 피를 흘리는 검은 상처를 앓고 있다.
강원도 「폐광진흥사업」은 단순히 석탄산업을 관광산업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하느님을 믿는 사람에게든,부처님을 믿는 사람에게든,그저 산천을 따라 놀며 산천을 믿는 사람에게든 백두대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교적 산천이다.우리 영혼을 여기 와서 치료할 수 있도록 이 곳을 먼저 치료한 다음 사계절의 안식처.수양지.기도장을 겸한 관광지로 만드는 것을 「폐광진흥사업」의 목표로 삼으면 좋겠다.
(논설고문) 강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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