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연의 IN-CAR 문명] 급발진 책임 없다곤 하지만 …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5면

최근 발생한 벤츠 최고급모델의 급발진 사고로 다시 한번 그 원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급발진 사고는 여러 원인 규명 연구와 사례분석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개가 100% 운전자 과실로 귀결됐습니다. 2002년 7월 제조물책임(PL)법이 시행되면서 한가닥 희망이 보이는가 했지만, 지금까지 급발진 사고로 보상받은 소비자는 2005년 에쿠스 관용차 사고의 김영란 대법관뿐이랍니다. 물론 이것도 자동차업체가 과실을 인정해 보상해준 것이라기보다는 리스사에서 알아서(?) 교체해준 경우죠.

그러나 7월 대법원에서 급발진 사고와 관련해 운전자의 무죄가 처음으로 확정됐습니다. 굉음과 함께 시속 100km로 150m가량을 주행하며 인명사고를 낸 경우였지만, 운전자가 달리는 차량을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엿보이는 등 여러 객관적 정황에 비추어 운전자에게 책임을 묻기는 곤란하다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까지 우리 법원은 자동차 제조업체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번 판결이 어떤 파장을 부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그간의 뉴스를 토대로 급발진 사고의 유형을 분석해보면 대략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근거리·순간적 급발진입니다. 시동 중 급발차, 주차 중 급발차처럼 짧은 거리를 돌진한 후 운전자에 의해 제동이 됐거나 장애물과 약한 충돌을 하며 정차되는 급발진입니다. 스키드마크(제동으로 인한 타이어 끌림)가 남지 않기 때문에 99% 운전자가 액셀러레이터 페달을 브레이크 대신 잘못 밟았다는 자동차업체의 여유만만한(?) 해명에 매번 질 수밖에 없는 사례입니다. 대부분의 피해자가 운전미숙으로 오해받을 수밖에 없는 아주 억울한 경우입니다.

둘째는 장거리·지속성 급발진입니다. 영화 속 테러리스트가 하듯이, 액셀러레이터를 끝까지 밟아 결국 강한 충돌 이후 물리적으로 차가 정차될 수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는 최악의 경우입니다. 이 또한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엄청난 길이의 스키드마크를 남기는 경우와 다른 하나는 브레이크마저 작동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물론 대형사고로 이어지겠죠.

저는 여기서 급발진 사고에 대처하는 자동차업체들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자동차의 구조상 급발진은 불가능하다!” 급발진 사고 때 업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내놓는 답변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박하고 싶습니다. “인체 구조상 운전자가 급발진 상황에서 태연히 가만 있기도 불가능하다!”

자동차업체가 팔 때 다르고 서비스할 때 다르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른바 ‘공식 입장’에서만큼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주기 바랍니다.

‘급발진의 사실 유무를 떠나 이번 사고에 피해를 본 소비자에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합니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급발진에 관한 원인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

우리는 차량품질과 관련한 업체의 공식 입장 속에 이런 문구가 우선 들어가 있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회사엔 책임이 없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도 말입니다.

남궁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