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금융사 의결권 단계적으로 축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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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정거래위원회와 열린우리당은 3일 재벌그룹에 속한 금융.보험사가 다른 계열사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했다. 의결권 축소는 단번에 30%에서 15%로 낮추려던 공정위 안과 달리 유예기간을 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3일 "열린우리당 측이 의결권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데 동의했다"며 "당의 요청대로 기업이 경영권 방어책을 마련하도록 1년 이상 유예기간을 두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재벌그룹의 금융.보험사는 임원 임면과 정관 변경, 영업의 양도 또는 합병에 대해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총수 일가와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이 30%가 안될 경우 모자라는 부분만큼만 의결권을 쓸 수 있다.

그동안 공정위는 이 30% 비율을 15%로 줄이자고 주장해 왔고 재정경제부와 재계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해왔다.

현재 재벌 그룹 내 금융사가 가진 다른 계열사 지분은 8%에 불과하다. 문제는 삼성전자다. 삼성그룹 내 계열사와 총수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16.47%다. 이 중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사 지분이 8.23%다. 지금은 30%까지 의결권이 허용돼 삼성그룹 측은 지분(16.47%)만큼 의결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의결권이 15%로 줄면 금융사 지분 중 1.47%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반면 삼성전자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외국인의 지분을 모두 합치면 15.45%가 된다. 그래서 삼성 측은 의결권을 더 제한하면 외국인 지분이 우호지분보다 많아져 삼성전자의 경영권이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공정위는 현실적으로 외국인투자가들이 담합하기는 힘들고, 다른 방어수단을 활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2002년 의결권 제한이 완화된 후 적대적 M&A는 한 건도 없었다"며 "오히려 금융사가 가진 계열사 지분이 4%대에서 8%대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헌재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부처 간 논의가 진행 중이어서 뭐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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