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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거머쥔 국정주도권, 내 사전에 2인자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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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8개월째, 박희태 대표 체제 석달을 맞은 '거여' 집권세력의 권력지도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그 자체다. '권력 1인자'인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곤 단 한명의 절대 강자도 없는 '新 춘추전국시대'의 모습이다. 현재 여권 내부에서는 어떤 물밑 암투와 견제가 이뤄지고 있는지, 이 대통령의 고민과 구상은 뭔지 중앙SUNDAY가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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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여권의 권력지도는 아메바를 연상시킨다. 쉴 새 없이 꿈틀대지만 핵심은 종잡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곤 그 누구도 권력 핵심에 안착해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는 철저히 몸을 낮추고 있다. 절대 강자가 없이 군웅할거하는 ‘신(新)춘추전국시대’의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8개월째, 박희태 대표 체제 석 달을 맞은 집권세력은 활발한 합종연횡, 치열한 물밑 암투와 견제 속에 ‘거여’ 권력의 새로운 헤게모니를 거머쥐기 위한 불안한 동거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 여권 갈등의 최전선은 여의도에 있는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워싱턴에 있는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긋고 있다. 홍 대표는 정권 초기 권력의 중심에 있던 이 전 위원과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이 자의 반 타의 반 2선으로 후퇴한 뒤 임태희 정책위의장과 함께 신실세로 부상했다. 4~6월 촛불정국 때는 여권을 홀로 지켜내다시피 했다. ‘버럭 준표’라는 별명답게 남다른 감각과 독설로 권력의 빈 공간을 재빠르게 선점해 갔다. 리더십 논란이 불거지던 지난 6일에는 청와대를 찾아가 ‘권력 1인자’인 이 대통령과 독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홍 대표 측근은 “연말 개각론도 이 대통령의 묵시적 동의하에 얘기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 어떻게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얘기를 함부로 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앞선 자를 가만 두고만 볼 경쟁자들이 아니었다. 이재오 전 위원이 먼저 치고 나왔다. 8월 한 달 “민주당에 끌려만 다닌다”며 홍 대표에게 견제구를 날리던 이재오계는 추석 직전 추경안 처리가 실패로 돌아가자 곧바로 칼날을 곧추세웠다. 공성진 최고위원을 필두로 진수희·권택기·김용태·안형환 의원 등이 융단폭격에 나섰다. 1차 흔들기에 성공한 이재오계는 다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지만 오래가진 않을 것이란 게 중론이다. 공 위원은 “나만큼의 충성도를 가진 의원이 20명은 족히 된다”며 “연말까지 세 불리기에 집중하며 ‘보스’의 내년 컴백에 대비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재오계 의원들은 수시로 미국을 드나들며 이 전 위원을 만나 왔다. 이 전 위원이 8월 자전거 전복 사고로 다쳤을 때나 9월 미국 전당대회 때도 함께 있었다. 이들은 이 전 위원의 빠른 귀국을 끊임없이 권유했지만 이 전 위원은 “내년에 귀국하겠다”는 입장을 굳혔다. 한 측근 의원은 “그게 바로 이재오의 자신감”이라며 “어차피 권력 공백을 메울 마땅한 사람이 없다고 보고 천천히 들어가도 늦지 않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오계의 반격에 홍 대표도 “난 여전히 비주류”라고 고백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전열 재정비에 부심하고 있다. 원내대표단과 정책위의장단을 중심으로 자기 사람 만들기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세 대결에 대비하고 있다. 홍 대표 본인도 “나도 이제 조직 좀 하겠다”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종부세 과세 기준을 높이려는 정부안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 것도 보다 ‘큰 판’을 노린 포석이란 해석이다.
 
박근혜·이상득·정몽준은 정중동

권력 핵심의 공백은 곧 박근혜 전 대표의 빈자리다. 권력판의 선수를 쥔 박 전 대표의 일보후퇴가 중진급 정치인들의 권력욕을 자극했다. 홍사덕 의원은 박 의원의 침묵에 대해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원칙을 겸허히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친박계 의원들과 함께 2선에서 숨죽인 채 ‘세월’을 낚고 있다는 얘기다. “신비주의 자체가 곧 대권 행보”(공성진)라는 견제도 만만찮지만 당분간 내공 쌓기에만 전념할 태세다.

반면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겉으론 조용한 듯하지만 여전히 왕성한 활동 영역을 유지하고 있다. 불교계 사태 때도 직접 전국의 사찰을 돌며 설득에 나서는가 하면 추석 때는 지인들에게 지역구인 울릉도 특산물을 돌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한일의원연맹 회장도 맡았다. 한 측근은 “대통령과 같은 DNA를 갖고 있는 만큼 열정 하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했다. 박근혜 의원과의 원만한 관계도 그의 행보를 계속 주시하게 하는 이유다.

정몽준 의원의 꾸준한 외곽 다지기도 주목의 대상이다. 7월 대표 선거에서 비주류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지만 이내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맨투맨 접촉을 늘려 왔다. 연말엔 16년간 지켜 온 대한축구협회장 자리도 내놓고 ‘차기’에 ‘다 걸기’ 한다는 각오다. 한때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렸던 정두언 의원은 침잠의 시기를 마감하고 최근 외부 활동을 재개하며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에겐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하다, 아니다’는 양론이 교차하는 중이다.
 
1인자 MB의 고민과 선택

이 같은 여권 권력지도의 불확실성은 ‘2인자는 두지 않는다’는 이 대통령의 오랜 지론에서 비롯됐다. 만기친람형에 ‘위임은 없고 집중만 있는’ 그의 스타일은 현대건설 사장 때부터 유지해 온 경영 철칙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뒤 더욱 확고해졌다는 게 참모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19일 박희태 대표와의 회동 때도 이 대통령은 “여당에는 계보도, 계파도 없다”며 여권 장악의지를 분명히 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임 정부의 속성상 2인자의 섣부른 부상은 곧바로 권력 누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더욱이 촛불 정국으로 6개월을 허송세월한 뒤 이제 막 주도권을 쥐고 나가려는 마당에 2인자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는 게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다. 박근혜 전 대표가 잔뜩 몸을 낮추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를 정확히 읽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가의 초점은 자연스레 연말 여권 개편에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이 정권 2년차를 맞아 보다 강력한 친정체제 구축을 통해 정국을 돌파하려 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 당직자는 “홍 대표가 천기를 누설하긴 했지만 흐름을 정확히 본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벌써 차기 총리와 여당 지도부 하마평이 오르내리고 있다. 총리 자리에는 정치적 야심이 없으면서도 행정 능력을 갖춘 명망가형 인물을 앉힐 것이란 시나리오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관리형 총리’가 청와대의 국정 장악력 유지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국민에게 감동을 주긴 힘들다는 데 대통령의 고민이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인 총리설도 나오고 있지만 이 대통령의 스타일에 비춰 볼 때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당 전면에 이재오계가 나서는 것도 이 대통령에게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충성도에서는 그만한 세력이 없겠지만 다른 경쟁자들의 견제가 불 보듯 뻔한 마당에 섣불리 힘을 실어 주기도 쉽지 않다. 여권 내 분란만 자극할 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권 내부의 원심력이 이미 통제권역을 벗어난 상황에서 권력 암투는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이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집중되는 까닭이다.

박신홍·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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