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글씨는 보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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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03면

민병산(1928~88)은 문학평론가 구중서씨 표현에 따르면 ‘한국의 디오게네스’요, 신경림 시인 회고를 돌이키면 ‘거리의 스승’이다. 굳이 세상의 잣대로 가르자면 문필가이며 서예가였고, 그를 좀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철학자이자 전기연구가요, 바둑 애호가로 꼿꼿한 육십 평생을 보냈다. 30대 초반부터 ‘새벽’ ‘사상계’ ‘세대’ 등 여러 잡지와 일간지에 에세이와 칼럼을 발표한 그는 높은 식견이 바탕을 이루면서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담백한 문장의 문필가로 독자를 울렸다.

울림과 떨림 -한 주를 시작하는 작은 말

88년 9월 환갑날 새벽에 그가 ‘기러기 훨훨 날아가듯’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를 흠모하고 따르던 지인과 후배들은 이렇게 기렸다. “세상을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지식이 필요 없는 법이라고/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 없는 법이라고/ 그렇게 많은 행동이 필요 없는 법이라고… 세상을 떠나서도 가진 것이 없을수록 좋더라면서/ 움직임이 적을수록 좋더라면서.”

선생은 생전에 자신이 쓴 글씨를 아는 이들에게 나눠 주길 좋아했다. 독학으로 서예를 공부한 뒤 이를 느꺼워해 날마다 즐겨 붓을 들었다. 그는 “왜 그리 평범한 한글 글귀를 쓰시느냐”는 질문에 “평범하고 쉬운 글이 좋은 것이야”라고 답했다. 그의 글씨가 미풍에 등잔불이 춤추는 것과 같다 하여 그의 호를 따 ‘청구자(靑丘子) 등잔불체’라고 부르는 이도 있다.

바둑을 좋아한 그가 남긴 “바둑은 길이 멀다. 그리고 길이 멀다는 게 바둑의 매력이다”와 “붓글씨는 보약을 먹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한 짝을 이루는 한마디다. 고인의 작고 20주기를 기리는 추모 글씨전 ‘민병산 선생님을 생각하며’가 30일까지 인사동 경인미술관(문의 010-4225-7807)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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