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 정원 꾸미고 옥상 전시회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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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호 06면

문래동 철재상가 골목길을 누비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2, 3층 외벽에 거대한 흑백 사진 프린트 천을 덧씌운 새한철강상사 건물이다. 사진 속 ‘豊橋朝鮮初級學校’라는 간판이 예사롭지 않다. 이 건물 3층에선 20일부터 현대미술실험실 ‘LAB39(지도에서 8번)’가 기획한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도요하시’전(10월 10일까지·문의 070-7578-5439)이 열리고 있다.

실험적 퍼포먼스 이뤄지는 새한철강 ‘LAB39’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는 전후(1945년) 우리 말글을 잊지 않고 가르치려는 국어강습소에서 출발, 60여 년간 명맥을 유지해 온 재일 한국인학교다. 전시된 사진들은 다큐멘터리 작가 안해룡(48)씨가 6년여 동안 도요하시를 드나들며 찍은 것.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학생들과 마주 웃는 교사, 신칸센 철도가 지나가는 풍경 속에 잔디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담겼다. 안씨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 재일동포의 삶이 투영된 도요하시의 공동체를 기억하고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도요하시전’은 사진전 형태를 넘어 공간 자체가 거대한 퍼포먼스다. “사진전을 한다면 학교 전체를 다 보여주겠다”고 한 아이들과의 약속에 따라 안 작가는 초창기 강습소 모습을 재현한 목조 교실을 옥상에 세웠다. 수업 장면과 학교 풍경을 찍은 흑백사진을 건물 입구에서부터 벽지 무늬처럼 장식했고, 옥상 입구에선 영상물을 프로젝터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마치 도요하시 초급학교를 방문하는 듯한 심정으로 들어서게 되는 3층 전시실과 옥상 목조 교실 안에 걸린 사진 수십여 점은 이 퍼포먼스의 일부일 뿐이다.

밝은 목조 교실은 주변 옥상 어디에서나 눈에 띈다. 새한철강 옥상엔 폭 80㎝, 높이 2m 정도의 붉은색 철조 설치물도 있다. LAB39 초청으로 방문했던 프랑스 설치미술가 안나 마노가 주변 철재상가의 매력에 반해 인근에서 산 자재들로 연출한 작품이다.

내부 조명을 활용하면 밤엔 멋스러운 스탠딩 램프 구실을 한다. LAB39 김윤환 대표는 “이 철조 정원에서 가끔 바비큐 파티를 여는데, 놀러 온 주민들도 흥겨워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흉물스럽게 방치되던 건물 옥상을 바꿈으로써 동네 이미지를 바꾸고, 나아가 도시 공간의 아름다움을 살려 내는 노력 자체가 나에겐 실험적 퍼포먼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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