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타이, 디자인보다 길이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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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일간지에 실린 어느 정치인의 사진을 보고 한순간 눈을 의심했다. “어, 이거 사진이 잘못 실린 거 아냐?” 사진가의 이름을 확인하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사진이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럼 그렇지.” 지나가다 언뜻 본 눈길에 사진이 이상하게 보였던 이유는 그 정치인의 넥타이 때문이었다. 넥타이의 무엇이? 길이였다. 정치인의 넥타이는 바지 지퍼 끝까지 내려와 있었다. 분명 상체를 수그린 자세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너무 긴 넥타이 길이 때문에 얼굴과 신체의 비율이 왜곡돼 보였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됐던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남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슈트에 다시 힘겨운 ‘생활의 끈’을 매기 시작했다. 그런데 넥타이, 제대로 매고 있습니까?

신사답게 잘 입는 ‘슈트의 법칙’에서 넥타이는 꽤 중요한 요소다. 가슴 한복판에 있으니까 한눈에 띄고, 유독 화려한 컬러와 패턴이 인정되는 아이템이니까 더욱 눈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넥타이를 구입할 때는 자체의 폭이나 길이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시즌의 유행에 따라 패턴과 컬러만 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넥타이를 맸을 때의 폼도 잘 관리해야 한다. 셔츠 사이에 만들어지는 노트의 굵기와 위치 등등은 그 사람의 패션 센스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에 앞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바로 넥타이 길이를 어디까지 늘어뜨리느냐의 문제다.

정답은 벨트의 버클을 ‘살짝’ 덮는 정도다. 그보다 짧으면 부동산으로 벼락부자가 된 졸부처럼 전체 룩의 느낌이 천박해진다. 또 너무 길면 누군가의 것을 빌려 입은 것처럼 촌스러워 보인다. 넥타이를 맨 채 등을 꼿꼿하게 편 바른 자세로 거울에 모습을 비춰 보면 그 확실한 희비를 스스로도 판단할 수 있다 (물론 뭐가 문제인지 모르고 보면 거울 속의 나는 언제나 흠잡을 데가 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나르시시즘’을 조금씩 가지고 있으니까).

바쁜 출근 시간, 넥타이 길이까지 신경 써 가며 거울 앞에서 요리조리 꽃단장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이해는 간다. 슈트를 이제 막 입기 시작한 초보자의 ‘해도 잘 안 된다’는 하소연도 인정한다. 그래서 요즘은 노트와 길이를 고정시키고 뒷목 부분에 고무줄을 연결한 넥타이를 파는 것도 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스킨 냄새와 함께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는 남자, 셔츠를 걷어붙이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다시 한번 회의에 집중하는 남자는 정말 멋있어 보인다. 그러니 부탁하건대 넥타이 길이에 조금만 신경 써 달라.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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