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政局 이승만 돈줄은 '경제輔國會'-梨花莊소장 문서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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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15 해방 직후 이승만(李承晩)의 가장 큰 돈줄은 대한경제보국회(大韓經濟輔國會)였다.
이번에 공개된 「이승만 문서」속에는 해방정국에서 이승만이 정치자금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구체적인 자료가 포함돼 있다.
경제보국회는 45년12월 황해도 출신의 대지주 김홍량(金鴻亮)을 비롯해 기업인.광산가.대지주등 당시 재력가들이 이름 그대로 『경제를 통해 애국을 하겠다』는 취지 아래 결성한 모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단체의 결성에 이승만이 적극적으로 개입,사실상 산파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이승만에게 1천만원의 거금이 건네진 한달뒤인 46년 6월 CIC요원이 경제보국회 회원이자 광산왕으로 불리던 최창학(崔昌學)을 인터뷰한 자료에 따르면 이승만은 45년 11월말 또는 12월초 자택인 돈암장으로 재력가 20여명을 불러 모아 『새로운정부가 수립되려는 모든 국가 지도자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시민들의 지원을 받는다.조선에서는 이러한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면서 경제보국회 결성을 독려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문서」의 또다른 문건에 따르면 애당초 이들 경제보국회원은 수천만원의 정치자금을 모으려 했다.그러나 뜻대로 모금이되지 않자 미 군정사령관 하지중장의 정치고문인 굿펠로대령의 도움을 청한 것으로 밝혀졌다.경제보국회가 당시 갖 고 있던 사실상의 임무는 어떻게든 정치자금을 마련해 이승만.김구(金九).김규식(金奎植)등 해방정국의 「3거두(巨頭)」를 비롯한 우익 정치인들에게 이 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승만 문서」에 따르면 경제보국회는 굿펠로의 요청에따라 46년 5월초 당시 김규식이 의장으로 있던 민주의원 운영비 명목으로 1백만원을 김규식에게 제공했다.이 단체는 이보다 앞서 46년초 김구에게도 1백만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기도 했다.그러나 경제보국회가 가장 많은 액수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정치인은 역시 이 조직의 산파역이었던 이승만이었다.「이승만 문서」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의 전신인 조선상공회의소 초대 회두(會頭)를 지낸 민규식(閔奎植)등 경제 보국회 소속 10명은 46년5월23일 이승만에게 1천만원의 거액을 「독립자금」 명목으로제공했다.이승만에게 건네진 1천만원은 오늘날 3억~4억원에 이르는 거금이다.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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