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여진 로봇? 길들일 수 있는 로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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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일본 애완 로봇 '아이보'

일본에서 애완 로봇으로 유명했던 ‘아이보’는 주인이 길들일 수 있는 로봇이다. 아이보가 멋대로 뛰어다니거나 주인의 말을 듣지 않을 때는 혼을 내기도 한다. 아이보는 처음 출시된 이후 4주 정도 가지고 놀면 다 큰 로봇견이 된다. 그런데 길을 들여야 하는 아이보와 길이 다 든 아이보가 있다면 소비자들은 어떤 아이보를 더 사고 싶어할까?

어떤 기업이 홈페이지에 소비자 불만을 접수해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캐릭터 또는 가상의 사람을 배치해 놓는다면 그 효과는 어떨까?

미국 남가주대 이관민 교수는 심리학적으로 보는 소비자의 반응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6일 KAIST 서울 캠퍼스(홍릉 소재)에서 열릴 ‘KAIST 정보미디어 글로벌 포럼-오락이 기술을 만나다’에서 이와 관련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다.

이 교수는 아이보의 경우 단연 길이 들지 않은 것을 소비자들이 선호하고, 홈페이지에 캐릭터를 배치한 기업은 문의 메일이 현격하게 줄어든다고 했다. 실존감의 차이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실존감은 무생물이나 인조물, 가상 캐릭터가 생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TV 연속극에서 배역을 맡은 탤런트를 실제 그런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아이보 실험은 4주간 두 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다. 한 그룹은 길들여지지 않은 아이보를, 다른 그룹은 이미 길들여진 아이보를 가지고 놀았다. 그 결과 대상자들이 느끼는 길들여지지 않은 애완 로봇의 실존감은 9점 척도에서 6.37로, 다 자란 것의 4.93 보다 훨씬 높았다. 심리적인 몰입도 역시 각각 7.71, 6.05, 사회적인 매력도는 각각 4.15, 2.23, 애완 로봇 몸체에 대한 매력도는 각각 4.32, 3.36, 구매 의사는 각각 5.38, 3.43으로 나타났다. 연구 대상 항목 모두 길들일 수 있는 아이보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인 ‘buy.com’ 홈페이지에는 가상 안내자가 e-메일을 보내기 전에 궁금한 것을 먼저 물어보라고 하는 난이 있다. 이 교수는 소비자들이 친절하게 궁금증을 풀어주는 가상 안내자가 생명이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가상 안내자를 배치하기 전보다 e-메일이 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는 e-메일에 대한 답변을 해줘야 하는 경비를 줄일 수 있고, 고객 만족도도 높일 수 있는 효과를 가져온다.

물체의 실존감을 높여 시장 점유율을 높인 제품으로는 필립스의 ‘앰비라이트 TV’가 꼽힌다. 이 TV는 화면 분위기에 맞춰 TV 뒤편에 설치된 조명 장치로 간접 조명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품 출시 이후 필립스의 TV 시장 점유율은 배가 높아졌다.

보통 물체에 대한 실존감은 화면이 크면 높아진다. 영화관에서도 화면이 크면 더 박진감 넘치는 것과 비슷하다.

이 교수는 양방향 소통 기법이 많이 적용되는 디지털 미디어에서는 이 같은 실존감이 소비자들의 선호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포럼 발표자

‘KAIST 정보 미디어 글로벌 포럼’이 26일 KAIST 정보미디어 경영대학원 주최, 본사 후원으로 KAIST 서울 캠퍼스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린다. 발표자는 다음과 같다.

▶기조 연설=프랭크 비오카 교수(미국 미시간주립대), 지니 한 박사(미국 패러마운트영화사 부사장)

▶특별 강연=이사 시아오 기술이사(국제영화산업협회)

▶발표=트레이시 플러튼 교수(미국 남가주대), 선선 림 교수(국립 싱가포르대), 이관민 교수(미국 남가주대), 노준용·김영걸·박병호 교수(이상 KAIST), 윤종선 팀장(SK텔레콤)·이영렬 상무(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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