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공정거래법 개정안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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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관한 최근 논란은 그동안 정부와 재계간에얼마나 대화가 없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경쟁촉진을 위해 필요한 법개정임을 강조하는 반면,재계는 규제완화.투명성 제고에 배치되는 개정내용이라고 비난하고 있다.「경제 헌법」으로 일컬어지는 공정거래법 개정의 기본취지와 내용에 대해 한국경제의 양대 견인차들이 이처럼 맞 서고 있다는사실은 한국경제의 장래를 위해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명분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않다.더구나 개방과 규제완화를 통해 나라안팎의 시장에서 최고의 질과 최저의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공정위가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는 대부분이 국내 대기업,특히 재벌기업의 상업활동을 제약하는 것에서출발하고 있다는데 있다.
명분은 있다.그리하면 이들의 시장지배력이 약화되고 따라서 크고 작은 기업들이 유사한 여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으니 그렇다.더구나 경제력집중을 억제함으로써 그 반사이익으로 중소기업을 돕는 격이 되고,따라서 반재벌적인 사회정서에도 들 어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가 공정거래 질서정착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기보다 경제력집중 억제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감을 지울 수 없다.심지어 재벌기업의 불공정한 상관행보다는 재벌기업 자체를 미워하는듯한 인상이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시비거리는 규정의 모호성 내지 포괄성이다.「기업을 겁주기 위해」 일부러 법을 모호하게 했다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부당한 공동행위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거나,모든 「경쟁제한적」기업결합을 금지하고 있고 또 대기업이 중소기업 분야에진출하는 경우는 일단 경쟁제한적일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그 예다. 법규정이 모호하면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정부의 자의적해석이 가능해지고 그 결과 법질서 자체가 문란해진다는 지적은 너무나 당연해 진부하기까지 하다.더구나 사회상황이나 「윗분」의뜻에 따라 행정처분의 발동여부가 좌우되는 한국적 현 실에서는 법의 투명성이야말로 공법에서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구성요건이다.「죄형법정주의」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무엇이 부당하고 무엇이 경쟁제한적이며 또 어떠한 경우에 어떤 제재를 받게되는지는 알아야 공정한 거래질서가 정착되지 않 을까.
공정거래법의 개정은 필요하다.21세기 무한경쟁시대의 상관행을다루기 위해 꼭 필요한 작업이다.그러기 위해서는 20세기 한국재벌 문제의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재벌 자체를 규제하기보다는 크고 작은 국내외 모든 기업의 공정한 상관행을 정착시키는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또 제도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민간자율경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 한다면 이번 개정은 「재벌규제법」인 현재의 공정거래법을「21세기 자유.공정거래에 관한 기본법」으로 탈바꿈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김정수 <본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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