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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섬세하다 부드럽다 … 사케는 애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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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를 찾는 이들은 주로 사케를 마신다. 술집이니 사케, 아니 술을 마시는 게 생소할 게 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이자카야엔 사케 외에도 맥주·소주·위스키 등 다양한 술이 있기 때문이다. 사케는 술을 뜻하는 일본어다. 그러나 일본 술 애호가들이 말하는 사케는 보다 구체적이다. 쌀을 발효시켜 만든 일본 청주만을 꼭 꼬집어 쓴다. 예부터 술이라곤 대부분 청주를 마셔왔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정종(正宗)도 일본의 사케 상표 중 하나다. 일본인들이 ‘한국의 술’ 하면 아직도 진로(眞露)를 떠올리는 거랑 비슷하다.

이자카야에서 만난 이은정(38)씨가 굳이 사케를 마시는 이유를 말한다. “일본 분위기엔 일본 술이 어울리지 않나요? 다양한 맛이 매력이에요. 입맛에 맞춰 골라 마시는 재미가 쏠쏠하죠. 알코올 도수가 낮아 망가질 염려가 덜하기도 하고요.”

사케도 하늘·땅·사람(天·地·人)의 합작품이란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사케 바람이 불면서 수입량이 껑충 뛰었다. 올 상반기에 752t이 들어왔다. 지난해 같은 기간(515t)보다 46% 늘어난 수치다.

사케를 빚는 쌀은 밥을 지어 먹는 쌀과 다르다. 밥쌀보다 1.5배쯤 큰 양조용 쌀이다. 대표적인 품종이 야마다니시키(山田錦)와 고햐쿠만고쿠(五百萬石). 쌀알이 크다 보니 벼의 키가 크고, 바람이나 태풍에 쓰러지기 쉽다. 재배가 어렵고 수확량이 적어 값이 밥쌀보다 두 배나 비싸다. 이 쌀을 그대로 다 쓰지도 않는다. 겉부분을 왕창 깎아버리고 술을 빚는다. 겉부분이 술의 맛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절반 넘게 깎아버리기도 한다. 보통 10%를 깎아내는 밥쌀에 비하면 어마어마한 양이다. 정미율은 사케 등급을 매기는 기준의 하나다. 다이긴조(大吟釀)는 정미율이 50% 이하인 고급 술이다. 그 뒤를 긴조(吟釀 )와 혼조조(本釀造)가 잇는다. 순수하게 쌀만 쓴 것은 준마이(純米)란 수식어가 붙는다. 양조용 알코올을 섞고, 단맛 등을 첨가한 저급 사케도 있다.


사케의 알코올 도수는 15~19도. 쌀의 전분과 아미노산이 분해하면서 만들어진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난다. 사케의 맛을 크게 아마구치(甘口)와 가라구치(辛口)로 표현하는데, 아마구치는 단맛이 특징이다. 가라구치는 번역대로 하면 매운 맛인데, 와인의 ‘드라이한 맛’과 흡사하다. 병에 붙은 라벨에 맛(주도·酒度)에 대한 수치(-5 ~ +10)가 있는데 바로 이들을 의미한다. 제로(0)를 기준으로 플러스(+)는 가라구치의 세기를, 마이너스(-)는 아마구치의 강도를 나타낸다.

사케에도 명주가 있다. 그런 술은 부르는 게 값이다. 720mL 한 병에 수십만원, 수백만원을 하기도 한다. 왕실에 진상한다는 니시키노마노즈루(錦の眞野鶴)나 고시노간바이(越乃寒梅) 등이 대표적이다. “명주들은 맛이 섬세하므로 생선회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 음식과 잘 어울립니다. 반대로 등급이 낮은 혼조조나 후쓰슈는 조림이나 데리야키처럼 진한 맛을 내는 음식과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죠.” 한국인 기키자케시(사케 감별사) 홍준성씨의 설명이다.

사케는 상온으로 마시기도 하고, 차게 마시기도 한다. 겨울철에 데워 마시는 정종의 개념과 다소 차이가 있다. 이는 최근 일본의 술 제조 기술이 좋아져 품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데우지 않고 차게 마셔도 사케의 맛과 향을 고스란히 즐기면서 뒷날 숙취로 고생하는 일이 없어졌단다. 일본에선 차게 마시는 사케를 ‘레이슈(冷酒)’라 한다. 잔은 맥주잔보다 작은 것을 쓰는데 같은 용량의 나무 되를 내놓는 집도 있다. 이를 ‘마쓰자케’라고 한다. 품질인 낮은 사케는 대부분 따끈하게 데워 마시는데 이를 ‘아쓰칸’이라고 한다. 아쓰칸은 조그마한 도자기 병에 담아 ‘오초코’ 라는 미니 잔에 따라 마신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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