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용천 복구에 힘을 모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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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소식을 처음 접한 것은 당시 필자가 출장 중이었던 영국의 한 택시 안에서였다. 이동 중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필자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안 택시기사가 "한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3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너무 엄청난 사고여서인지 북한 당국도 과거와 달리 곧바로 사고 발생 소식을 외부에 알렸고, 그 결과 전 세계가 북한 돕기에 나서고 있다니 그나마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 정부 또한 즉각 각종 지원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내용에서 너무 단기적인 처방에 치중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당장은 구호품과 부상자 치료에 필요한 의약품 등의 지원이 우선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아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어루만져 주는 민족애를 발휘하고자 한다면 다른 나라들과 좀 다른 차원의 지원방안을 찾아야 한다. 바로 파손된 주택이나 학교, 기타 건물 등의 시설 복구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북한 당국은 이번 사고로 파손된 25개의 공공건물과 800여채의 주택은 신축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피해를 본 3600여가구에 대해서는 보수작업을 계획하고 있다 한다. 이 정도 규모의 복구작업이라면 현재의 북한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북한 측은 지난달 27일 개성에서 열렸던 당국 간 접촉에서 복구용 자재 및 장비 지원은 수용했지만 의료진이나 기술인력의 파견은 거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로 북측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도록 배려하면서 여러 대안을 가지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 이 문제만 타협된다면 나머지 일들은 역할분담을 통해 어렵지 않게 매듭지을 수 있을 것이다.

시설 복구 지원에서 첫째는 재원문제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좀더 조직적인 모금활동을 펼칠 수 있고, 남북경제협력기금을 활용하거나 국회에서 특별예산을 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 국민은 흔쾌히 동의해 주리라 본다. 다음은 누가 지원 주체가 되느냐 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정부나 민간단체 어느 쪽도 가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 산하기관으로서 개발도상국가에 대한 무상원조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그 역할을 맡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건설업계 일각에서 복구작업 지원을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고 있음을 감안할 때 복구작업 수행 주체에 관한 문제도 그다지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설계사와 건설업체들이 직접 참여할 수도 있고, 전체 복구사업 계획 및 관리는 우리나라 업체가 수행하되, 시공분야는 중국의 건설업체들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한 방안이다. 복구사업 지원은 그 효과 면에서 단순한 생필품이나 의료품 지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들과 아픔을 같이하고 복구를 위해 함께 땀 흘려 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동포애를 맛보게 될 것이다. 이를 기회 삼아 이번 사고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는 철도 등 북한의 노후한 사회간접자본시설 개선사업에 우리나라의 기업과 기술자들이 참여하는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나아가서는 남북 협력관계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북한의 개방을 한층 앞당길 수 있는 전환점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남북한 당국의 자세 전환이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동포들을 위해서라도 당분간 체제나 이념은 접어야 한다. 육로 지원은 당연히 이뤄져야 한다. 복구작업에는 대규모 물동량이 수반되게 마련이고, 신속한 작업진행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가누지 못할 정도로 큰 슬픔에 빠져 있을 용천 주민들이 다가올 겨울의 혹한에 또다시 시달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김종훈 한미파슨스㈜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