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박정희와 수하르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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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는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세사람의 몽타주 같다.수하르토는 육군 전략사령관이던1965년 공산당에 의한 쿠데타를 진압한다는 구실로 군대를 끌고 나섰다가 내친 김에 국부(國父)요,초대 대통 령이던 수카르노를 하야시키고 대통령이 됐다.권력탈취 방법에서 수하르토와 전두환이 닮은 꼴이다.
전두환과 노태우 두사람을 한꺼번에 닮은 것은 절대권력을 잡고있는 그 손으로 일족(一族)을 위해 부(富)를 긁어모으고 있는저 끝없는 탐욕이다.수하르토 자신은 국영항공기 제작회사의 회장겸직이고 여섯명의 아들.딸들이 가진 기업의 수는 1백개에 육박한다. 박정희와의 「붕어빵 관계」는 어떤가.지난 6월 인도네시아 민주당(PDI)당원 3백명이 수마트라의 메단에서 임시 당대회를 열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를 당총재 자리에서 축출하고 수르야디를 후임으로 선출했다.메가와티는 수카르노의 딸이 어서 수하르토는 그 이름이 갖는 마력(魔力)으로 97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세(勢)를 불리고 98년 대선(大選)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도전하는 사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자는 것이다.10.26사태얼마전 박정희가 김영삼(金泳三)을 신민당총 재자리에서 추방하고정운갑(鄭雲甲)을 총재대행으로 세운 공작정치를 다시 보는 것같다. 박정희의 이 정치공작은 그의 불운(不運)을 재촉했다.수하르토의 메가와티 추방공작은 그의 집권 30년만에 처음으로 반(反)수하르토시위의 기폭제가 됐다.
닮은 데는 또 있다.박정희는 74년 8월 부인 육영수(陸英修)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과 고독감때문에 균형감각과 건전한 판단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수하르토는 지난 4월 분신(分身)과도 같은 반려자요,조언자였던 부인 을 잃었다.
자카르타의 정치 관측통들은 메가와티 축출의 악수(惡手)는 수하르토가 부인과 함께 균형감각을 잃은 결과라고 해석한다.
군인들이 절대적인 우위(優位)를 차지한 인도네시아의 정치풍속도도 3공(共)에서 5공까지의 한국과 같다.인도네시아에서 군부는 국토방위 임무와 함께 국가발전을 주도하는 권한까지 헌법으로위임받고 있다.5공의 민정당을 보안사령부 군인들 이 만든 것처럼 인도네시아의 여당 골카르당도 군부가 창당했다.각료중 군출신이 많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나라 27개 주지사 모두와 5백명의 국회의원중 1백명이 군출신이다.3,5공시절 한국에서처럼 인도네시아의 장군들은 퇴역하면 외 교관이나 국영기업간부로 진출한다.
물론 수하르토가 한국의 장군출신 대통령들과 닮은 데가 많다고해서 비슷한 말로(末路)를 암시하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현재로선 지난 달의 시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급격한 변화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정당이 수하르토에게 도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그러나 민주화를 지지하는 군인과 관료숫자가 늘어나도 그들이세력을 조직화해 새로운 권력 기반을 갖기까지는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이번 시위에 도시 중산층이 많이 가담한 것을 보고 필리핀에서와 같은 피플파워의 등장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다.그러나 필리핀의 경우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군부는 코라손 아키노가 주도하는 민주화운동을 지지했다.인도네시아의 군부에는 그들이 누리는온갖 특권을 쉽사리 포기할 자극이나 동기가 없다.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 상원 청문회에서 수하르토에게 권력이양을 권고하는 발언을 했다.그러나 인도네시아는 한국과달리 안보(安保)와 경제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권문제나 민주화에 대한 미국의 간섭에 거의 영 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개미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시위를 통해 「풀뿌리들」은 수하르토의 권력의 보트를 잠시 흔들어 보았다.그들은선악과(善惡果)를 맛본 것이다.빈부차.물가고.권력층의 부패가 이대로 가면 수하르토체제의 종말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수하르토가 파국을 막는 길은 박정희와 전두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는 것이다.
(국제문제대기자)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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