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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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켄트교수는 전날 사령관을 따라 전선 가까운 곳으로 시찰갔다가 한발 먼저 부산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강의시간에 대기 위해서였다.켄트교수만을 태운 그 헬리콥터가 추락한 것이다.천만 다행으로 조종사는 살아남았다.켄트교수도 목숨만은 건 졌다.그러나중태다.그는 곧바로 야전병원으로 실려갔으나 그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고,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어느 정도의 중태인지도 알 수 없다.
이것이 남편이 알아낸 정보의 전부였다.
새삼 아뜩하면서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들은 어쩌면 저주라도 받은듯 한결같이 지워져 버리는가.
「전쟁」이란 불가사리는 삽시간에 수많은 생명을 삼켜 버린다.
특히 젊은 남자들을 줄줄이 삼키며 용트림하는 불가사리다.
그렇긴 해도 생명을 부지하는 남자 수가 전사자 수보다 훨씬 많은데,을희가 사랑하는 남자는 어째서 그 편에 끼지 못하는지 야속했다.
패배감과 동시에 분노를 느꼈다.그 불가사리에 등대어 돈을 벌며 배덕(背德)을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남편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다. 켄트교수 일은 씻은듯이 잊은 표정으로 저녁식탁에서 미군용 깡통 맥주를 들이켜고 있는 남편이 「생각」을 모르는 짐승처럼 보였다.
을희는 옷장 속에서 진홍색 시퐁 벨벳의 「오팔」 치마.저고릿감을 꺼내 밥상 옆에 들이밀었다.
『이것도 마저 그 여자한테 갖다 주시지요.』 남편은 태연한 자세로 옷감을 쳐다보더니 밥상을 제치고 잽싸게 을희를 껴안고 넘어뜨렸다.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마다 아내의 육신을 강제로 차지하는 것이 그의 상투수단이었다.어찌보면 그것은 갈등을 해소하기위한 「수단」이라기보다 「전쟁놀이」를 방불케 했다.
안간힘을 다해 저항하는 아내에게서 새 영토를 차지한듯한 정복의 쾌감을 누리는 것같았다.
아니지,「정복」이란 개념적인 낱말로 그 행동을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절도(竊盜)」와 「살육(殺戮)」이라 구체적으로 표현해야 옳다.
『뺏고 빼앗기고,죽이고 죽는 것이 이 세상 이치야.빼앗기고 죽는 자가 되겠어,아니면 빼앗고 죽이는 자가 되겠어?』 남편의이같은 인생관은 부부행위에 있어서도 어김이 없었다.을희는 육식(肉食)동물 앞의 초식(草食)동물이었다.
이날 남편은 여느 때와 달리 을희의 은밀한 굴안 깊이 사정(射精)을 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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